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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위 순교자

특집 순교자

by 巡禮者 2010. 8. 24.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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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위 순교성인 약전 및 명단 


-103위 순교성인 약전


모든 민족들의 구원을 원하시는 천주께서는 200년 전에 이 땅에

기묘히 천주교 신앙을 심으시어 자라 꽃피게 해 주셨습니다.

자발적인 교리연구를 거쳐 1784년에 이승훈 선생이 베드로란 이름으로 영세 입교하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신자 공동체는 처음부터 천주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박해를 받아 가문에서 쫓겨나고,

신분도 재산도 잃게되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빼앗기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꾸준히 발전하였습니다.


목자없이 출발한 한국 신자 공동체는 한동안 두 분의 중국인 신부를 모실 수 있었을 뿐,

1836년 모방 신부의 입국으로 시작된 불란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활동 때까지

40여 년 간을 평신도만의 공동체로서 수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신자 공동체는 성사의 은총을 받으려는 열망으로 주교, 신부들을 영입해들이기

위하여 북경 삼천리 길을 걸어서 오가면서 교황에게 또는

북경 주교에게 눈물겨운 호소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한국땅을 찾아오는 선교사들을 모시는데도 크나큰 위험이 뒤따랐으니 오시는 주교,

신부들이나 그분들을 숨겨드리며 신앙생활을 하는 교우들은

다 같이 죽음을 각오한 용사들이였습니다.


과연 1886년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기까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기꺼이 죽음을 당하신 스승,

그리스도를 닮아 피를 흘린 제자들은”(교회헌장 42)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중 11위의 성직자외 92위의 평신도,

모두 103위께서 오늘 시성되는 것입니다.


정하상 바오로,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조신철 가롤로 등은 신유박해 이후 목자없는

신자 공동체를 돌보며 선교사 영입의 길을 찾으려고 수없이 북경을 왕래했고

마침내 파리외방전교회 주교,

신부들을 맞아들여 한국교회 발전의 새 장을 열어 놓았습니다.


목자들과 함께 남녀노소, 지식의 유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계층의 평신도들이 피를 흘렸으니,

천주께서는 아무런 차별 없이 누구나 다 완덕의 길로 부르심을 이분들

안에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라우렌시오 범주교를 비롯하여 10위의 불란서 선교사들이

하느님 사랑 때문에 문화와 풍습이 다른 이 땅을 찾아와,

낮에는 숨어있고 밤에는 걸어서 방방곡곡 교우들을 방문하고 성사를 베풀며,

사랑을 실천으로 가르쳤습니다.


최초의 한국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천주께 대한 믿음과 교우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불가능을 가능케하여 선교사 영입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고,

사제서품 1년 1개월 만에 한 강변 새남터에서 26세의 꽃다운

나이에 칼 아래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갈림없는 마음으로(고린 전 7, 32-34)

주님만을 사랑한 김효주 아녜스와 효임 골롬바 자매를 비롯한 15위 동정녀 중 몇 분은

아직 수도생활이 알려지지 않았던 그 당시의 이미 공동생활을

하면서 병자와 가난한 이웃을 돌보았고, 이광렬 요한은

교회에 봉사하기 위하여 독신으로 지내다가 순교하였습니다.


남명혁 다미아노와 이연희 마리아 부부를 위시하여 모범적 가정을 꾸몄던 여러 부부 순교자,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도 정의와 정결과 가난의 모범을 보여주신 남종삼 요한,

박해로 부친을 잃고 재산까지 몰수 당하고서 짚신과 미투리를 삼으며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언제나 기쁨속에 살던 박후재 요한, 틈틈이 묵상에 전념하던 권득인 베드로,

교리는 잘 몰라도 천주님과 성모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온전히 봉헌한 박아기 안나,

13세의 어린 나이에 용감히 신앙을 고백한 유대철 베드로도 특기해야 할 분들입니다.


100년이 넘도록 계속된 박해중에 만 여명이 순교하였지만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대박해 때 순교한 분들중에서 1925년에 79위,

1968년에는 24위, 모두 103위가 시복되었고 오늘 그분들이 순교한

새남터와 절두산이 바라보이는 이곳 한강변에서 영광스럽게 시성되는 것입니다.



1984년 5월 6일 추기경 김수환


■ 103위 순교성인 명단(신분 / 순교일 / 순교지)


한국 가톨릭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공경을 받는 103위의 성인들을 모시게 되었다.

피로써 하느님의 진리를 증언했던 우리의 순교 선열들이 마침내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가톨릭이 이 땅에 들어온 지 200년이 넘었다. 가톨릭 2000년의 긴 역사에 비한다면 짧은 시일이나,

그 동안 끊이지 않았던 모진 박해상은 그야말로 무지막지한 것이었다.


박해로 인한 순교자의 수는 줄잡아도 10,000명에 이르나 그 중 교회법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영광의 성인 위에 오른 이가 이들 103위인 것이다.


한국 역사상 가장 혹심했던 박해는 1801년의 신유박해, 1839년의 기해박해,

1846년의 병오박해, 1866년의 병인박해 등을 들 수 있는데,

그 가운데 병인박해는 그 규모로나 가혹성으로나 가장 처참한 것이었다.


103위의 성인 중 기해 및 병오박해 때 순교한 79위는 1925년 7월 5일에,

병인박해 때 순교한 24위는 1968년 10월 6일에 각각 복자품에 올랐는데,

1984년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모두 시성의 영광을 입게 되었다

1.김대건 안드레아(신부 / 1846. 9. 16. / 새남터)

2.정하상 바오로(회장 / 1839. 9. 2. / 서소문 밖)

3.이호영 베드로(회장 / 1838. 11. 5. / 형조전옥)

4.정국보 프로타시오(공인 / 1839. 5. / 포청옥)

5.김아기 아가타(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6.박아기 안나(부인 / 1839. 5. 4. / 서소문 밖)

7.이소사 아가타(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8.김업이 막달레나(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9.이광헌 아우구스티노(회장 / 1839. 5. 4. / 서소문 밖)

10.한아기 바르바라(과부 / 1839. 5. 4. / 서소문 밖)

11.박희순 루치아(동정궁녀 / 1839. 5. 4. / 서소문 밖)

12.남명혁 다미아노(회장 / 1839. 5. 4. / 서소문 밖)

13.권득인 베드로(상인 / 1839. 5. 4. / 서소문 밖)

14.장성집 요셉(환부 / 1839. 5. 6. / 포청옥)

15.김 바르바라(과부 / 1839. 5. 7. / 옥사)

16.이 바르바라(동정녀 / 1839. 5. 7. / 옥사)

17.김 로사(과부 / 1839. 7. / 서소문 밖)

18.김성임 마르타(과부 / 1839. 7. / 서소문 밖)

19.이매임 데레사(부인 / 1839. 7. / 서소문 밖)

20.김장금 안나(과부 / 1839. 7. / 서소문 밖)

21.이광렬 요한(공인 / 1839. 7. / 서소문 밖)

22.이영희 막달레나(동정 / 1839. 7. / 서소문 밖)

23.김 루치아(동정녀 / 1839. 7. / 서소문 밖)

24.원귀임 마리아(동정녀 / 1839. 7. / 서소문 밖)

25.박큰아기 마리아(부인 / 1839. 9. 3. 서소문 밖)


26.권희 바르바라(부인 / 1839. 9. 3. / 서소문 밖)

27.박후재 요한(상인 / 1839. 9. 3. / 서소문 밖)

28.이정희 바르바라(과부 / 1839. 9. 3. / 서소문 밖)

29.이연희 마리아(부인 / 1839. 9. 3. / 서소문 밖)

30.김효주 아녜스(동정녀 / 1839. 9. 3. / 서소문 밖)

31.최경환 프란치스코(회장 / 1839. 9. 2. / 옥사)

32.앵베르 라우렌시오(제2대 조선교구장 주교 / 1839. 9. 1. / 새남터)

33.모방 베드로(신부 / 1839. 9. 1. / 새남터)

34.샤스탕 야고보(신부 / 1839. 9. 1. / 새남터)

35.유진길 아우구스티노(회장, 역관 / 1839. 9. 2. / 서소문 밖)

36.허계임 막달레나(부인 / 1839. 9. 6. / 서소문 밖)

37.남이관 세바스티아노(회장 / 1839. 9. 6. / 서소문 밖)

38.김 율리에타(궁녀 / 1839. 9. 6. / 서소문 밖)

39.전경협 아가타(궁녀 / 1839. 9. 6. / 서소문 밖)

40.조신철 가롤로(역관 / 1839. 9. 6. / 서소문 밖)

41.김제준 이냐시오(회장 / 1839. 9. 6. / 서소문 밖)

42.박봉손 막달레나(과부 / 1839. 9. 6. / 서소문 밖)

43.홍금주 페르페투아(과부 / 1839. 9. 6. / 서소문 밖)

44.김효임 골롬바(동정녀 / 1839. 9. 6. / 서소문 밖)

45.김 루치아(과부 / 1839. 9. / 옥사)

46.이 가타리나(과부 / 1839. 9. / 옥사)

47.조 막달레나(동정녀 / 1839. 9. / 옥사)

48.유대철 베드로(소년 / 1839. 10. 1. / 옥사)

49.유소사 체칠리아(과부 / 1839. 11. 3. / 옥사)

50.최창흡 베드로(회장 / 1839. 12. 9. / 서소문 밖)


51.조증이 바르바라(부인 / 1839. 12. 9. / 서소문 밖)

52.한영이 막달레나(과부 / 1839. 12. 9. / 서소문 밖)

53.현경련 베네딕타(여회장 / 1839. 12. 9. / 서소문 밖)

54.정정혜 엘리사벳(동정녀 / 1839. 12. 9. / 서소문 밖)

55.고순이 바르바라(부인 / 1839. 12. 9. / 서소문 밖)

56.이영덕 막달레나(동정녀 / 1839. 12. 9. / 서소문 밖)

57.김 데레사(과부 / 1840. 1. 9. / 옥사)

58.이 아가타(동정녀 / 1840. 1. 9. / 옥사)

59.민극가 스테파노(회장 / 1840. 1. / 옥사)

60.정화경 안드레아(회장 / 1840. 1. 3. / 옥사)

61.허협 바오로(군인 / 1840. 1. / 옥사)

62.박종원 아우구스티노(회장 / 1840. 1. 1. / 당고개)

63.홍병주 베드로(회장 / 1840. 1. 1. / 당고개)

64.손소벽 막달레나(부인 / 1840. 1. 1. / 당고개)

65.이경이 아가타(동정녀 / 1840. 1. 1. / 당고개)

66.이인덕 마리아(동정녀 / 1840. 1. 1. / 당고개)

67.권진이 아가타(부인 / 1840. 1. 1. / 당고개)

68.홍영주 바오로(회장 / 1840. 2. 1. / 당고개)

69.이문우 요한(복사 / 1840. 2. 1. / 당고개)

70.최영이 바르바라(부인 / 1840. 2. 1. / 당고개)

71.김성우 안토니오(회장 / 1841. 4. 9. / 옥사)

72.현석문 가롤로(회장 / 1846. 9. 9. / 새남터)

73.남경문 베드로(회장 / 1846. 9. / 포청옥)

74.한이형 라우렌시오(회장 / 1846. 9. / 포청옥)

75.우술임 수산나(과부 / 1846. 9. / 포청옥)


76.임치백 요셉(사공 / 1846. 9. / 옥사)

77.김임이 데레사(동정녀 / 1846. 9. / 포청옥)

78.이간난 아가타(과부 / 1846. 9. / 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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