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2014년 노벨 물리학상에 ‘청색 LED’ 개발 日과학자 3명

노벨상(Nobel)

by 巡禮者 2014. 10. 9. 11:13

본문

 

2014년 노벨 물리학상에 ‘청색 LED’ 개발 日과학자 3명

 

 

“고효율 - 친환경 램프혁명 주도”

 

 

 

올해 노벨 물리학상은 새로운 물리학 원리를 찾는 대신 인류에게 고효율·친환경의 새로운 광원(光源)을 선물한 일본 출신 과학자 3명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노벨상위원회는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최초로 개발한 아카사키 이사무(赤崎勇·85) 일본 메이조대 교수와 아마노 히로시(天野浩·54) 나고야대 교수, 나카무라 슈지(中村修二·60) 미국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대(UC샌타바버라) 교수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노벨상위원회는 “20세기가 백열등 시대였다면 21세기는 LED 시대”라며 “백열등에 비해 소비전력은 10분의 1에 그치면서 수명은 100배 이상 지속돼 새로운 빛의 시대를 열게 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질화갈륨(GaN)을 근간으로 하는 화합물 반도체에 N형과 P형 불순물을 주입한 뒤 전류를 흘리면 재료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빛을 방출한다. 이렇게 전기에너지를 빛으로 변환해주는 소자가 LED다. 1960년대 빨간색을 방출하는 LED 소자가 개발됐지만 파란색과 초록색 LED는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았다. 윤의준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아카사키 교수의 제자였던 아마노 교수가 대학원생 시절 청색 LED 개발의 단서를 발견한 뒤 아카사키 교수가 1990년대 처음으로 청색 LED를 개발했다”면서 “이후 나카무라 교수가 청색 LED를 상업화시켰다”고 말했다.

 

 

 

노벨 물리학상’ 나카무라 “남들과 다른 것을 하라”

이번 수상으로 일본의 노벨 과학상 수상자는 19명으로 늘었다. 특히 일본에서는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메이조대는 아카사키 교수의 수

지방대학·중소기업 출신
LED보다 빛난 ‘인생 역전’

“내 방식대로 공부한다며
수학 공식도 안쓰던 소년”

“언빌리버블!”(믿을 수가 없군요!)

7일(현지시각) 새벽 2시.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 있던 나카무라 슈지(60) 샌타바버라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의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2014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음을 알리는 전화였다.

 

일본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인 시코쿠의 도쿠시마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중소기업에 근무하던 평범한 엔지니어 출신에게 세계 모든 과학자들이 열망하는 노벨상이 돌아갔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3명의 일본인 가운데 한명인 나카무라가 일본 사회에 전한 메시지는 “남들과 다른 것을 하라”는 것이다.

 

1954년 시코쿠 에히메현에서 태어난 나카무라는 어린 시절부터 만화영화 <철완아톰>의 오차노미즈 박사(코주부 박사)를 동경하는 과학에 관심 많은 소년이었다. 그를 기억하는 고등학교 동급생 니시다 데쓰는 “나는 내 방식으로 공부할 거야”라며 공식을 쓰지 않고 수학·물리의 어려운 문제를 풀던 그를 기억한다고 회상했다. 대학 시절 스승이었던 다다 오사무 도쿠시마대학 명예교수도 그에게 “책을 읽지 마라. 책을 읽으면 고정관념에 빠질 수 있으니 스스로 생각하라”며 그를 격려했다.

 

대학 졸업 후 그가 택한 회사는 직원 200여명의 지역 중소기업인 니치아화학공업이었다. 이 회사에선 브라운관에 쓰이는 형광체를 만들고 있었다. 그의 회사 생활은 잘 풀리지 않았다. 입사 10년이 다 되도록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0년 동안 여러 논문을 보고, 종래의 방식으로 열심히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사람이 한 것을 흉내 낸 것이다. (당연히) 제품은 팔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입사 10년이 되던 1988년 “어려워서 사람들이 손을 대지 않는 것을 시작해 보겠다”고 결심한다. 개발 대상은 당시만 해도 20세기 안에는 만드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청색 엘이디(LED·발광 다이오드) 제품이었다. 나카무라는 오가와 노부오(작고) 사장에게 이 제품을 개발해 보자고 제안했다. 그는 회사의 지원을 받아 1989년 미국 플로리다대학에 유학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제품 개발에 나섰다.

 

나카무라는 “내가 대기업 연구원이었다면 사장에게 직접 건의하는 일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공부든 일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고생도 참을 수 있고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의 지난한 고투가 시작됐다. 제품을 개발하는 4년 동안 회의에도 참석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500번 넘는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1993년 39살의 나이에 세계 최초로 청색 엘이디를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수상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인 8일 오전 나카무라는 <엔에이치케이>의 아침 뉴스 방송에 출연했다. 그는 사투리가 섞인 빠른 어조로 “나는 시골인 에히메현에서 태어나 도쿠시마대학을 나왔고, 시골의 중소기업을 다녔다. 나보다 우수한 학생들이 많으니, 할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니치아화학공업을 상대로 ‘정당한 발명 대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미국 언론과의 기자회견에선 “미국에서는 누구나 아메리칸드림을 꿈꿀 수 있지만 일본에는 진정한 자유가 없다”는 비판도 남겼다. 그러나 연구를 지원한 오가와 사장에 대해서는 “가장 감사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2000년 이후 1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과학적 성취는 대부분 1980~90년대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19세기 말인 메이지시대부터 꾸준히 이뤄진 기초과학 투자가 수십년이 지난 뒤 조금씩 성과를 내기 시작해 이제 ‘노벨상 수상’이라는 열매를 수확하고 있다는 얘기다. 상을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