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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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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9) 사랑의 근원이신 하느님/배광하 신부
연중 제20주일 (마태 15, 21~28)
발행일 : 2008-08-17 [제2611호, 6면]

-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

단장의 아픔

중국 진나라의 ‘환온’이 촉나라로 가던 중 삼협을 지날 때였다고 합니다. 시종들던 사내가 숲 속에서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잡아 배로 돌아왔는데 어미 원숭이가 슬피 울며 따라왔다고 합니다. 배는 백여 리를 훨씬 지나 포구에 이르렀는데, 먼 길을 달려온 어미 원숭이가 배로 뛰어 내렸는데 이미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배 안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한 치 길이로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 잃은 슬픔이 얼마나 컸던지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마디마디 끊긴 것입니다. ‘단장(斷腸)’이라는 고사성어 이야기입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병자들이나 소외당하는 사람, 굶주린 이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라는 표현을 자주 만나게 되는데, 그리스말 원문대로라면 이는 예수님이 “창자가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셨다”라는 말이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더 가슴 아파하셨던 예수님 마음의 일면을 또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짓는 죄에 대하여도 그것이 모두 당신의 탓인 양, 죄 없으신 분께서 십자가의 보속을 달게 받아 짊어지려 하셨을 때, 그분 사랑의 절정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이를 루카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뇌에 싸여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졌다”(루카 22, 44).

그분은 도무지 회개하지 않고 변화되지 않는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셨고(루카 19, 41), 라자로의 죽음을 보시고 우셨습니다(요한 11, 35). 가엾은 인간 사랑에 대한 북받치는 연민으로 다가 가셨던 예수님께서는 진정 사랑밖에 모르던 분이셨습니다.

인간의 아픔을 몰라라 하지 않으시고 장이 끊어질 듯한 아픔을 느끼셨던 그분이 우리가 믿는 주님이십니다. 그분 때문에 우리는 고통의 바다라 일컬어지는 인생 광야에서 또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는 것이며, 죄의 구렁에서도 다시 빠져나올 결심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살이의 온갖 질곡에서도 우리가 간절히 그분 이름을 부르기만 한다면 달려와 우리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실 주님을 우리가 믿고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의 사랑은 바로 이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성의 사랑

인간 사랑의 가장 큰 극치는 어머니의 사랑, 모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은 자주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어머니의 사랑으로 비유하곤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장 쉽게 느낄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을 성경은 인간의 사랑 중에 가장 완성된 사랑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나안 여인은 찢어지는 아픔을 안고 예수님을 찾습니다. 뭇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의 눈에 들어올리 없습니다. 만류하며 예수님 곁에 오지 못하게 막는 제자들의 강한 팔도 어머니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는 개가 되어도 좋았습니다. 딸의 병을 고칠 수만 있다면 온갖 굴욕을 다 참을 수 있었습니다.

“나를 전부 주어도 딸을 살릴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같은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며, 그 사랑 때문에 예수님께서 병자에게 장이 끊어질 아픔으로 다가가셨고 마지막엔 당신의 전부를 치욕의 십자가에 넘기시어 우리를 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낫게 해 주신다는 믿음과 끊임없는 간청임을 오늘 가나안 여인, 그 어머니의 모습에서 또다시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치유의 말씀도 어머니의 믿음과 간청 뒤에 나오게 됩니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마태 15, 28).

프랑스의 지질학자이자 신학자였던 ‘떼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 신부는 “우주의 모든 광활한 별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돌아갈 수 있는 힘의 마지막 근원에는 ‘사랑’이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사랑을 인간에게서 찾자면, 어머니의 사랑, 즉 모성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국의 시인 ‘밀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행하여진 가장 용감한 싸움, 당신은 그것을 세계 역사 속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이 세상의 어머니들에 의하여 행하여진 싸움이다.”

우리는 애덕송 기도를 바칠 때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근원이시며…” 사랑의 첫 발신지는 하느님이십니다. 우주를 돌아가게 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인간의 어머니들보다 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는 매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가나안 여인처럼 장한 믿음과 애절한 간구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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