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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세상보화 버리고 천상보화 얻으리/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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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7) 세상보화 버리고 천상보화 얻으리/배광하 신부

연중 제17주일 (마태 13, 44~52)
발행일 : 2008-07-27 [제2609호, 6면]

- 지상에서의 마지막 목표 -

숨겨진 보화

오늘 예수님의 숨겨진 보물 비유 이야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습니다. 우선 보물을 발견하여 가진 것을 다 팔아 밭을 산 뒤의 결론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야기가 중간에서 절단되어 버린 느낌이 있습니다. 그리고 보물을 발견했다면 그 자리에서 파내어 집으로 가져올 일이지, 다시 묻어 두고 재산을 다 팔아 밭을 샀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밭의 주인이 보물이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대로 두지도 않았을 것이고, 절대 그 밭을 팔 까닭도 없을 것입니다. 주인이 보물의 내막을 알지 못하는데 밭을 몰래 샀다면 그건 훔친 것이나 다름없는 비난받을 일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비유 이야기에 숨은 뜻은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생각하듯 보물섬을 발견한 횡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가르침입니다. 즉 이야기가 중간에서 끝나버린 것은 어쩌면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그 다음 이야기를 숨기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보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풍요에서 오는 기쁨, 보물이 아니었기에 더 이상 이야기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다른 사람은 알 수도 없는 내게 있어서만 보물이고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밭주인에게도 그 보물은 아무 가치가 없을 수 있습니다.

동창 신부 한 분은 최고 대학에서 법을 공부하였고 아버님도 판사이셨습니다. 부모님은 아들이 법조계의 길을 걷기를 원하셨습니다. 그 길은 세상이 주는 명예와 안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 나아가 마음만 먹으면 권력과 부를 거머쥘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동창 신부는 성녀 대 데레사의 글을 읽다가 갑자기 자신의 보장된 미래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망설임없이 사제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만약 동창 신부에게 주님 밭에서 발견한 보물에 대해 이야기하라면 그 역시 예수님의 오늘 비유에 대해 같은 이야기를 할 것 같습니다. 그가 발견한 보물 이야기는 세상 물욕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는 바보같이 들리거나 미친 사람 취급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만이 간직한 기쁨에 천상 보물을 발견한 이야기를 중간에 그쳐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물은 어차피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주인은 하느님이시고 사야할 값은 우리 자신의 모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 29)

하느님의 나라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처럼 교회 역사 안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보화를 발견하여 가진 것을 모두 버리고 하늘의 보화와 바꾼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쁨은 세상 모든 것을 다 바꾼다 하여도 결코 살 수 없는 그야말로 보물 중에 가장 값진 보물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물은 한 개인만이 소유하며 누리는 세상의 보물과는 다릅니다. 모두가 공유해야 하며, 여럿이 힘을 모을 때 그 보물은 더욱 값진 가치를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찾은 이들은 아직 보물을 찾지 못하여 세상 여러 물질적인 근심에 짓눌려 있는 이들에게 다가갔고 참된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함께 찾을 것을 알려 주었고 같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기쁨과 평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작용함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를 일찍이 온몸으로 체험하였던 바오로 사도는 오늘 또다시 이렇게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

세상이 주는 안락한 삶을 버리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방글라데시에서 하느님 나라의 보물을 찾고 계시는 미국 메리놀회 선교 사제이신 ‘봅 멕카일’ 신부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슬람푸르라는 복잡한 거주 지역에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대나무로 된 움막에 산다. 나지막한 양철 지붕으로 덮인 약 4x2미터 정도 되는 공간 속에서 나는 기도하고, 하루 두 번 식사를 준비하고, 휴식을 취하고, 내 자전거를 보관한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가까운 공동 우물에 가야 물을 길을 수 있다. 화장실도 공동 화장실을 쓴다.

더운 철이면 사람들이 ‘천장에 선풍기가 달린 집에서 사시지 왜 이런 데서 사세요?’라고 몇 번이나 묻는다. 그러면 나는 ‘당신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저도 그렇게 살겠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 길이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며,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밭의 보물을 찾은 이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 길을 사는 이들은 시련 속에서도 주님의 기쁨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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