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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나눔,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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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8) 나눔,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길/배광하 신부

연중제18주일 (마태 14,13~22)
발행일 : 2008-08-03 [제2610호, 6면]

- 영원한 축제의 나라 -

어서 와서 먹어라

한국 초대 교회의 신앙은 그야말로 공동체 정신으로 뭉쳐진 신앙이었습니다. 특히 교우촌의 삶은 나눔의 삶이었습니다. 많은 백성이 굶어죽는 보릿고개 때에도 산중의 교우촌 신자들은 콩 반 쪽이라도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농사와 옹기 만드는 일과 숯을 굽고 장작을 패는 일은 평생 해보지 않았던 양반 교우들도 사랑하는 가족과 출세의 영욕을 모두 버리고 스스로 그 고단한 길을 택했습니다. 세속에서 멋들어진 풍류와 산해진미를 맛보았을 그들이 천국의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가시밭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순교의 때가 오면 이제야 천국을 간다는 기쁨에 기꺼이 목을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그 기쁨과 영광의 날에 사랑했던 주님께서 천국 잔치를 열어주시어 ‘술 한 잔 주시겠지’라는 작은 소망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분들 역시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축복의 예언을 기억하고 계셨을 것입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 1).

성경은 자주 하느님 나라를 잔치와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주 하느님 나라를 잔칫집으로 비유하셨습니다. 특별히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그 잔치에 초대하셨습니다(루카 14, 21 참조).

한국 초대 교회의 교우들 역시 예수님의 이 같은 사랑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그들 공동체에 굶는 사람이 오면 받아들여 함께 먹었고, 온갖 장애와 서러움을 안고 찾아오는 이들을 형제로 여기고 극진히 대접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결코 굶주리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부족함 없이 채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은 선배 신앙인들의 믿음은 물론, 애덕의 실천에도 턱없이 부족한 모습을 보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 겨우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분임을 우리는 자주 잊고 살았던 것입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복음의 예수님 기적 뒤에는 분명 기적을 보았던 이들의 깜짝 놀람이 뒤 따르는 법인데,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 뒤에는 아무도 놀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자들도 군중도 그저 덤덤할 뿐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빵을 남산만큼, 물고기를 고래만큼 크게 하셨고,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셨다면, 분명 제자들과 군중은 깜짝 놀랐을 것이고, 그 기적은 복음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는 이 기적의 이야기엔 모든 목격자들이 놀라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분명 예수님께서 인간의 이성과 과학적 논리로 증명할 수 없는 신비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이 아님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평범한 인간도 할 수 있는 일로 오천 명을 먹이신 것입니다. 그래야 훗날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도 그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이고, 당신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보다는 그것이 더욱 효과적인 가르침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모든 복음사가가 기억하고 있는 이 기적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 많은 군중을 먹이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의 공통된 반응은 불가능이었고, 이구동성 군중을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적은 양이라도 그것을 나누라고 가르치십니다. 나누면 모두가 먹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복음의 핵심입니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모아 모두가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예수님의 기적이었고, 사도행전 초대 교회의 모습(사도 4, 32~35)이었으며, 한국 초대 교회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기적은 당대의 일회성 기적으로 그쳐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어질 기적이 된 것입니다. 그 같은 나눔의 기적을 우리는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세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오늘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눔의 기적을 살아야 훗날 영원한 천국 잔치에 초대 받을 수 있음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성자라 일컬어졌던 프랑스의 ‘아베 피에르’(1912~2007) 신부는 삶의 목적을 묻는 이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삶의 목적은 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데 있다”고, 그리고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타인인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타인인 당신이 불행하고 괴로우면 나도 아픈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돌려보냄이 아니라, 배고픈 군중과 함께 나눔이 진실한 사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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