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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주님 현존을 두 눈으로 보아라/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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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 주님 현존을 두 눈으로 보아라/배광하 신부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요한 3, 13~17)
발행일 : 2008-09-14 [제2615호, 6면]

- 보라, 십자나무 -

보라

신구약 성경 강의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약의 가장 중요한 말씀을 나름대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구약성경의 가장 중요한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사건입니다.

그런데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인간에게 동반자로 곁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대변해 주는 말씀으로 창세기의 야곱에게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교활하고 세속적 욕망과 집착이 강했던 사기꾼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하여 도망갑니다. 그 외롭고 두려운 도피길에서 피곤에 지쳐 잠이 든 야곱의 꿈에 하느님의 말씀이 들려옵니다.

“보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켜 주고, 너를 다시 이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너에게 약속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창세 28, 15)

그런데 복음을 강의하면서 또다시 가엾은 인간과 함께 하신다는 예수님 동행의 말씀에 깊은 묵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

그리고 창세기로부터 시작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긴 사랑의 편지인 성경 끝자락 요한 묵시록에서는 결국 인간을 떠나지 못하시는 절절한 하느님 사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묵시 21, 3)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찾아낸 하느님 인간 동행의 말씀은 공교롭게도 모두 “보라”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 지도 모릅니다.

사람은 하루에 151권의 책 분량에 해당하는 정보를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고 처리한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시각을 통하여 83%, 청각을 통하여 11%의 정보를 처리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눈을 주신 까닭은, 눈을 통하여 당신의 위대한 업적과 창조의 놀라움을, 그 안에 인간을 위하시고 사랑하시는 현존을 ‘보라’하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눈을 뜨고 보게 되면 세상은 온통 기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가득 찬 기적 안에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놀라운 은총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볼 수 있도록 만드신 그 은총의 눈을 우리는 감고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구원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성경의 모든 증언을 통하여 하느님의 동행, 현존을 보았습니다.

때문에 모세는 단호히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주님께서 하신 이 모든 위대한 업적을 두 눈으로 보았다.”(신명 11, 7)

살아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한 희망의 여정에 실패한 까닭은, 그들이 보았던 하느님의 놀라운 업적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온갖 불평불만을 일삼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를 비롯한 탈출 1세대들은 가나안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보고도 보지 못한 의심의 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실패한 구약의 불뱀 대신 신약의 십자가가 다시금 세워졌습니다. 낮엔 구름기둥으로, 밤엔 불기둥으로 현존하셨던 하느님 구원의 기둥이 십자가로 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신한 하느님의 끝없는 사랑이 십자나무에서 꽃피워졌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볼’ 것을 호소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다른 그 어떤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보면, 그 안에 구원의 길이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느님 스스로 십자가에 들어 올려 진 까닭을 오늘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 그 구원의 은총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 15)

십자가가 위대한 까닭은, 첫 인간 아담으로부터 죄로 죽은 모든 인간들, 우주의 온갖 고통과 죽음이 이 십자가를 통하여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생명의 상징이며 인간의 고통에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 위로이시며, 고통의 길을 동행하시는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하신 “다 이루어졌다”(요한 19, 30)라는 말씀은,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완성시킴과 동시에 고통과 죽음을 승리로 이끄셨다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때문에 십자가 밑에서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백인대장을 비롯한 많은 이들은 자신들이 본 것을 증언하며 말합니다.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 54)

참으로 십자가는 막혔던 하늘과 땅, 하느님과 인간을 이어 주며, 불신과 증오와 미움으로 얼룩진 인간과 인간을 용서와 사랑으로 연결시켜 주는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볼 때 구원은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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