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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원한과 증오의 사슬을 푸는 법/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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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2) 원한과 증오의 사슬을 푸는 법/배광하 신부

연중제23주일 (마태 18,15~20)
발행일 : 2008-09-07 [제2614호, 6면]

- 사랑은 율법의 완성 -

우리가 죽인 형제들

옥중에서 회개와 속죄의 삶을 살다 46세의 젊은 나이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권 베드로’라는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사형수였던 그에게 냉대가 아닌 끝없는 사랑과 격려, 충고로 함께 하셨던 ‘조 안나’ 할머니 덕분에 그는 회개와 속죄의 삶을 살게 되며 끝내 빛을 향하여 걷게 됩니다. 빛의 세계로 이끈 조 안나 할머니에게 그가 보낸 편지는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어 놓습니다.

“급강하한 기온은 보잘것없는 저 같은 인간에게까지 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저에게 전해주신 참으로 귀한 묵주, 어머님과 함께 기도를 바치는 기분이어서 잠시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답니다. 묵주 덕분에 외롭지도 슬프지도 않아 큰 위안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총일 테죠? 하느님의 뜻에 감사드립니다.”

“올해에도 이승에서 사순절을 맞으며 부족한 저의 죄 값에 대한 보속을 조금이나마 더 키워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제겐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재의 수요일 아침 묵상을 하는 동안 사랑을 배우고 용서를 배워 못다한 지난 날의 삶을 되살려 보자는 묵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사랑의 참된 충고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마태 18, 15)

한 발 더 나아가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네가 악인에게 그 악한 길을 버리도록 경고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그가 죽은 책임은 너에게 묻겠다.”(에제 33, 8)

그럼에도 우리는 이웃을 쉽게 단죄하며 마음으로, 입으로 죽이기만 하였지, 그가 다시 회개하여 돌아오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영영 그 수렁에서 헤어나오지 말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참다운 충고에는 반드시 기다림의 인내와 사랑의 관용이 필요합니다. 늘 그의 처지에서 모든 일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셨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묵상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뒤를 따른다고 고백하는 신앙인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죽였던 이들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들도 하느님 눈에는 더 없이 귀중한 자녀이고, 그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승리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읍’이란 뜻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평화로웠던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지역을 다녀온 분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이스라엘이나 아랍 세계나 한결같이 보수 정통 신앙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종교인’일수록 무력 전쟁만이 평화의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평화가 왔느냐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피는 반드시 피를 불렀고, 원한은 더 큰 원한을 쌓아 갔습니다. 그것이 증오의 인간 역사였습니다.

이 같은 원한과 증오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용서가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당신의 온 몸을 내어던져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카인의 자손인 인류는 끊임없는 전쟁을 저질렀고, 그 추악한 전쟁 중 끔찍한 전쟁은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는 모든 종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나와 생각이, 사상이, 이념이, 신앙이 다르다고 단죄했던 증오의 사슬을 이제는 풀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증오의 사슬을 묶었던 그리스도인들이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사랑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분명 사랑이 승리했던 역사임을 가르쳐야 합니다.

프로이센의 젊은 왕 ‘프리드리히 2세’(1712~1786)는 왕의 자리 등극 후 많은 청원서와 진정서들을 처리하는 과정에 가톨릭 교회와 관련된 청원서를 진정 화해와 관용과 용서로 풀었다고 합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프로테스탄트 신봉 대신들은 프로이센에서 로마 가톨릭 학교를 폐쇄시키자고 청원합니다. 프로이센은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젊은 왕은 청원문의 여백에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합니다.

“종교는 모두에게 허용되어야 하고, 감독관은 어떤 종교가 다른 종교에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는데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원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원한과 증오의 사슬을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그리하여 완성된 신약의 율법 사랑에 대하여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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