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639) ‘생명의 길’ 택하도록 널리 전하라 /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36

본문

 

(639) ‘생명의 길’ 택하도록 널리 전하라 / 배광하 신부
연중 21주일(요한 6, 60-69) : 영원한 생명의 말씀
발행일 : 2009-08-23 [제2661호, 10면]

장하고 복된 믿음

제가 머물고 있는 강원도 인제의 겟세마니 피정의 집은 소양 호숫가에 자리 잡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이 피정의 집은 호주 선교사인 ‘조선희 필립보’(Philip Crobie, 1915-2005) 신부가 설립한 기도의 집입니다.

조선희 신부는 일제시대에 한국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려다가 일제에 의해 포로가 되어 호주로 추방을 당하시고, 해방이 되자 두 번째 한국으로 오시어 6·25 전쟁 때에는 인민군 포로가 되어 북한에 끌려가십니다. 그 뒤 3년 간 압록강에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겪으신 후 다시 호주로 추방을 당하시고,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세 번째 한국에 오시어 만 58년을 한국과 한국인들을 위하여 사셨던 장한 믿음을 지니셨던 사제이셨습니다.

조선희 신부는 6·25 전쟁 중 인민군 포로로 끌려가시면서 그때의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여 훗날 책으로 엮어 출판하였습니다. 「기나긴 겨울」(가톨릭출판사)로 번역된 인민군 포로의 끔찍했던 수기의 제일 마지막에 조선희 신부는 자신이 얻은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보다 더 중요하고 귀중한 자유를 얻었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을 자유이고, 나의 신앙을 공공연히 고백할 자유이다. 또한 그것은 인생 행로를 나와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앞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유이며, 우리의 마음 속에 안식을 안겨주려 기다리시는 그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유이다. 살아서 우리와 함께 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미 그 안식을 찾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신앙의 자유는 숱한 역경과 고난 가운데에서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졌던 여러 신앙 선조들의 믿음 덕분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당신들의 삶으로 가르칩니다.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우리 시대의 은총에 대하여 감사하라고,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떤 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생명보다 귀한 신앙을 끝까지 보존하며 살라고 말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없어 떠나갈 때, 베드로 사도는 이 같은 고백의 가르침으로 우리를 일깨우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요한 6,68).

들으라

성경 전반에 걸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사는 아마도 “들으라”와 “보라”일 것입니다.

믿음은 듣는 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봅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도 생명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 옛날 소년 사무엘도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이스라엘의 대 예언자가 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참된 신앙을 선택하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분만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여호 24,18).

그리하여 시편의 시인은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희생과 제물을 기꺼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의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시편 40,7).

‘들음’은 인간이 먼저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의 하소연을 들으신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화답송에서 다시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믿음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그들이 울부짖자 주님께서 들으시어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시편 34,16·18).

생명의 말씀을 들은 우리들은 이제 우리의 책임을 또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실로 수많은 이들이 신앙의 기로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쉬고 있는 교우들은 급증하고, 복음 선포는 날이 갈수록 더디어지고, 현대인들은 하느님을 찾기보다는 술집이나 노래방, 운동장이나 쾌락을 더욱 추구하고 찾습니다. 신앙보다는 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워 새로운 맘몬인 ‘돈’을 더욱 찾습니다. 이러한 때에 믿는 이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어느 사제는 현대 세계의 급박한 변화 앞에 위기의식을 느끼며 떨고 있는 교회와 신앙인들의 모습을 ‘꼬리를 다리 사이에 집어넣고 짖어 대며 뒷걸음치는 겁 많은 개’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세상 그 어떤 것도 이길 수 없는 말씀의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명 힘있는 생명의 말씀을 우리는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른 신앙을 선택하며 살라고 말입니다. 그 길이 생명의 길임을 알려야 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