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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외쳐라/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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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 외쳐라/ 배광하 신부

연중 제23주일 (마르 7,31-37) : 열려라
발행일 : 2009-09-06 [제2663호, 12면]

들을 수 있는 귀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왕자」에는 어른들의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이야기하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옵니다.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어른들에게 새로 사귄 친구 이야기를 하면, 그분들은 제일 중요한 것은 도무지 묻지 않는다. 그분들은 ‘그 친구의 목소리가 어떠냐? 무슨 장난을 제일 좋아하느냐? 나비를 수집하느냐?’이렇게 묻는 일은 절대로 없다. ‘나이가 몇이냐? 형제가 몇이냐? 몸무게가 얼마냐? 그 애 아버지가 얼마나 버느냐?’하는 것이 그분들이 묻는 말이다. 그제서야 그 친구를 아는 줄로 생각한다. 만약 어른들에게 ‘창틀에는 제라늄이 피어 있고, 지붕에는 비둘기들이 놀고 있는, 고운 붉은 벽돌집을 보았다…’고 말하면, 그분들은 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생각해내지를 못한다. ‘십만 프랑짜리 집을 보았다’고 해야 한다. 그러면 ‘야, 참 훌륭하구나!’하고 부르짖는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온갖 잡다한 생각과 근심 중에 살아가느라 우리에게 참된 진리의 삶을 살아갈 방법을 일러주는 많은 예언자들의 외침에 귀를 막았습니다. 여러 방법과 기회 등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도 귀를 열줄 몰랐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귀 먹고 말 더듬는 이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는 그 옛날 예수님 시대에 해당되는 기적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행하시는 기적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듣지 못하는 귀를 열어 달라고 주님께 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계산에만 이치가 밝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이치에는 어두운 우리의 들을 수 없는 귀를 주님께서 들을 수 있도록 열어 주셔야 합니다. 주님의 한 말씀, “열려라”가 바로 나에게 외쳐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오늘 군중의 이 외침이 나 자신의 외침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분이 하신 일은 모두 훌륭하다.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 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시는 구나”(마르 7,37).

프랑스의 매화마을이라는 명상센터를 운영하고 계시는 베트남 승려 ‘틱낫한’은 자신의 시 「참된 유산」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면서/ 살기 위해 이리 저리 구걸해온 너, / 거지 아들 노릇 이제 그만 두고 / 돌아와 유산을 물려 받아라. / 우리 마땅히 자신의 행복을 즐기고 / 그것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해야 할 말

6500년 전 지구상에 공룡이 멸종되었습니다. 20년 안에 지구상 전체 생물의 20%가 멸종될 것이라고 미국 하버드대학 생물학과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 박사는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인간은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면서 자신도 마지막 멸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귀를 열어 주시고, 입을 열어 주신 까닭은 들을 귀를 가지라는 것과 반드시 말해야 할 것을 하라신 까닭이었습니다. 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그 악에 동조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더구나 세상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죽임으로 몰고 가는 어두운 세상에 경고의 메시지를 외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절망이 가득한 이 세상에도 참된 기쁨과 희망이 존재한다는 것을 삶으로 살아야 하고 체험한 삶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주 교구장이신 이병호 빈첸시오 주교는 당신의 책 「생명을 주는 힘이신 성령」에서 사도 성 바오로가 예수님의 죽음과 성령을 통해 체험했던 은총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생명·기쁨은 주어진다는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얻어 성령으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 그 앞에서는 죄인과 성인이 따로 없다는 것, 가장 위대한 성인도 자신의 공로나 노력으로 그것을 얻지는 못한다는 것, 아무리 철저하게 고장난 인간이라도 그 앞에서 절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하느님께서는 그런 것과는 아무 상관 없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죽음만을 보고 모든 사람에게 무죄선고를 내려주셨다는 것, 그래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이 기쁜 소식을 분명히 들을 권리가 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이 기쁜 소식을 목청껏 외쳐야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거룩하고 존귀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참 기쁨이 무엇인지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때문에 외칠 수 있는 입이 열려 있는 한 분명히 외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이사야 예언자가 그 옛날 기쁨으로 예언하였던 바가 오늘 우리에게 실현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 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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