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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 죄인을 구원하는 분이 참 임금/ 손용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12. 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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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00) 죄인을 구원하는 분이 참 임금/ 손용환 신부

그리스도 왕 대축일 (루카 23, 35ㄴ-43) : 창

페터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플랑드르에서 가장 명성을 누렸던 바로크시대 화가입니다. 그는 미술에서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외교관으로서도 탁월했습니다. 특히 그의 그림은 과거에도 사랑받았고, 지금도 명작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그가 그린 ‘두 강도 사이에 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는 루카복음 23장 33∼43절과 요한복음 19장 16∼37절이 그 배경입니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성경말씀을 하나의 그림으로 표현하다 보니, 다소 어수선한 느낌마저 듭니다. 그러나 루벤스는 열악한 여건을 재해석하여 하나로 완성했습니다.

성경말씀처럼 이 그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윗부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시는 장면과 아랫부분의 군사들이 창으로 찌르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그림의 위와 아래를 연결해 주는 것이 바로 창입니다. 그래서 이 그림의 부제목이 ‘창’입니다.

먼저 윗부분 그분의 오른쪽에는 나쁜 강도가 예수님을 모독하며 절규합니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루카 23,39) 그의 절규에는 믿음이 없고, 단지 죽음에 대한 분노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적대감만 가득합니다.

그러나 왼쪽의 선한 강도는 그를 꾸짖고 나서 예수님께 애원합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그의 애원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시선은 그의 마지막 희망을 반영하듯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그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는 죄명 패가 붙어있습니다. 또 예수님의 다섯 상처에서는 선혈이 흘러내립니다. 그러나 그분은 죽어 있지만 근육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강도에게 이르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그분은 숨을 거두시는 순간에도 죄인에게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분이 세상의 참 임금 아닐까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죽는 순간에 그분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나쁜 강도처럼 분노와 저주로 대하겠습니까? 아니면 착한 강도처럼 회개와 희망으로 대하겠습니까?

이제 아랫부분을 보겠습니다. 여기에는 세 부류의 인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숨지신 것을 확인하고 그분의 옆구리에 창을 찌르는 군인과 처형자들이 한 부류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죽음을 보고 깊은 슬픔에 잠겨 애도하는 마리아와 추종자들이 다른 한 부류입니다. 또 그분의 죽음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터번을 쓴 지도자와 구경꾼이 마지막 한 부류입니다.

구경꾼들은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 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루카 23,35) 그들의 말투에는 믿음이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께 대한 조롱과 빈정거림만 있을 뿐입니다.

추종자들은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성모님은 검은 상복을 입고 예수님의 죽음을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기도합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성모님의 간구 또한 죄인들의 구원 아닐까요? 사도요한은 성모님께 기대어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는 사랑하는 분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상기된 얼굴로 나타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발에서 흐르는 선혈을 보고 두 팔을 들고 있습니다.

처형자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릅니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루카 23,37) 그들의 말투에는 희망이 없고, 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구원에 대한 절망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부류의 사람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어떤 눈으로 바라봅니까? 처형자입니까? 추종자입니까? 아니면 구경꾼입니까?


- 두 강도 사이에 있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페터 파울 루벤스 작, 1619∼1620
손용환 신부(원주교구 안식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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