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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3) 착한이들에 대한 섬세한 사랑/ 최인각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1. 8. 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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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733) 착한이들에 대한 섬세한 사랑/ 최인각 신부

연중 제16주일 (마태 13, 24-43) 가라지의 비유
발행일 : 2011-07-17 [제2755호, 10면]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설명하시고 가르치실 때 주로 비유를 사용하십니다. 하늘나라의 특성은 인간적인 계산방법이나 사고방식으로는 알아듣기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비유 중 하나가 ‘가라지의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그가 자는 동안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갑니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 종들이 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에 주인은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라고 대답합니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주인은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고 대답합니다.

좋은 씨를 뿌린 그곳에 원수(악마)가 와서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라는 표현에서 드러나듯이, 좋은 일을 할 때에 악마도 함께 작용한다는 의미가 이 비유에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자라난 가라지를 보고 종들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주인은 “가만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밀까지 뽑을지 모른다.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어라”고 말합니다. 이를 통해 하느님의 농사법은 세상의 법과 다름을 보여줍니다. 세상의 농사법은 가라지를 즉시 뽑아내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수확량에, 과정보다는 결과에 관심이 많습니다. 큰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하찮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농사법은 전체 수확량을 높이는 실용적인 농사법과는 다릅니다.

이를 볼 때, 가라지 비유의 초점은 ‘더 많은 결실보다도 밀 줄기의 안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관심은 당신 백성의 철저한 안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나약한 당신 자녀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남모르게 도와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우리가 작은 것으로도 상처받을 수 있는 아주 약한 존재이며, 악마들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는지 정확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탄식을 하며 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십니다.

또한, 이 비유를 통해 우리가 가라지와 밀 곡식을 식별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살아가면서 주위에 전혀 도움이 안 되고, 해롭게만 느껴지는 이들을 우리는 쉽게 ‘가라지’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중에 알곡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오로 사도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 그 대표적인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처음에 가라지처럼 보였지만, 하느님의 눈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집 짓는 자들이 버린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밀과 가라지를 정확히 분별할 수 없는 우리는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라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습니다. 성급한 판단은 금물입니다.

가라지와 밀의 뿌리가 엉켜 있는 것처럼, 지상의 여정에 있는 우리의 인생은 서로 엉켜 있습니다. 직장, 학교, 가정, 심지어 교회에서까지 서로 엉켜 살아갑니다. 이렇게 엉킴 속에서 가라지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다 뽑아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모님이나 가족, 이웃, 친구들이 가라지 같다고 다 뽑아버리면, 결국 언젠가 나도 뽑히는 존재가 되고 말 것입니다. 나에게도 독버섯 같은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부족한 우리가 서로 부둥켜안고 살아가기를 바라십니다. 주님께서 가라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허락하심은 또 다른 주님의 사랑(착한 이들에 대한 섬세한 사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가라지라는 존재의 불필요성보다는 착하고 의롭게 살아가는 이들을 더욱 존중하고 그들이 상처받는 것을 아파하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라지와 밀 곡식에는 각기 그 최후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시어 “남을 죄짓게 하는 모든 자들과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라고 단언하십니다. 한편으로 무섭고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큰 위로이며 희망이자 기쁨의 말씀입니다.

지금 나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지, 아니면 위로와 희망 속에서 기뻐하는지 바라보며, 마지막 날에 해처럼 빛나는 존재가 되도록 오늘도 끊임없이 노력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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