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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4) "한 번에 한 사람씩 작은 것부터”/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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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4) "한 번에 한 사람씩 작은 것부터”/배광하 신부

연중 제23주일 (마르코 7, 31~37) :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다
발행일 : 2006-09-10 [제2516호, 6면]

- 자유와 해방 -

성경의 주제

구약성경이 방대한 양을 지니고 있지만, 창세기로부터 시작하여 마카베오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경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이집트 탈출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노예 생활의 끔찍함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자유와 해방을 맛보게 된 사건을 구약성경은 잊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의 어린이들은 초급 히브리어를 배운 뒤, 2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제1과의 시작을 “우리 조상은 예전 이집트의 노예였습니다”로 배운다고 합니다. 때문에 구약의 주제는 당연히 이집트의 탈출입니다.

신약성경 역시 적지 않은 분량을 지니고 있지만 4복음서를 비롯한 모든 성경이 기억하고 있는 사건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인 ‘부활’입니다. 때문에 신약성경의 주제는 ‘부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이집트 탈출과 신약의 부활을 모두 ‘파스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경 전체의 주제는 파스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파스카란 ‘자유’와 ‘해방’입니다. 구약의 파스카는 인간 육체의 노예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신약의 파스카는 인간 죄의 노예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인 것입니다.

따라서 신·구약 성경 전체의 주제는 ‘자유와 해방’인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도 바로 인간의 자유와 해방 때문이셨고, 예수님께서도 당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것임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 18)

때문에 인간의 자유와 해방을 가로막는 그 어떤 종교와 체제와 이념도, 아무리 그럴듯한 화려한 꾸밈이 있더라도 하느님 창조 정신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인간 구원 정신에 위배된다고 보겠습니다. 또한 자유와 해방의 존귀한 인간을 인종과 인종, 계층과 계층, 신분과 신분, 부와 가난, 종교와 종교로 구분 짓고 차별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정신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밑바탕이 되어 왔습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야고 2, 1)

작은 것에서부터

인도의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난 결코 대중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난 다만 한 개인을 바라볼 뿐입니다. 난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단지 한 사람만을 껴안을 수 있습니다. 단지 한 사람, 한 사람씩만…. 따라서 당신도 시작하고, 나도 시작하는 것입니다. 난 한 사람을 붙잡습니다. 만일 내가 그 사람을 붙잡지 않았다면 난 4만2000명을 붙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노력은 단지 바다에 붓는 한 방울의 물과 같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 한 방울의 물을 붓지 않았다면 바다는 그 한 방울만큼 줄어들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가족에게도,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지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복음의 예수님께서도 병자들을 치유하실 때 수많은 군중을 한꺼번에 고쳐주신 일은 없으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처럼, 한 번에 한 사람씩 치유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행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한 번에 한 사람씩 돌보며 그들의 치유를 돕는다면 며칠 내로 온 세상 모든 이들을 돌볼 수 있을 것이며, 그럴 때 한 인간은 온 세상 보다 위대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야 나 역시 구원과 자유와 해방을 맛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의 병자들은 육체적인 질병으로의 고통도 심했지만, 병자나 장애인이 당했던 죄인이라는 낙인이 더 큰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와 장애를 앓는 이들을 치유하셨다는 것은 그들로부터 영육의 해방을 맛보게 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일찍이 이 벅찬 감격을 예언한 이사야 예언자는 오늘 이같이 노래합니다.

“그 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 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그 때에 다리 저는 이는 사슴처럼 뛰고, 말못하는 이의 혀는 환성을 터뜨리리라.”(이사 35, 5~6)

이 벅찬 감격을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주님은 초대하셨습니다. 그것은 내 자신이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도록 실천할 때 열리는 초대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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