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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6) 자는 토끼 깨워 가는 미덕/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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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6) 자는 토끼 깨워 가는 미덕/배광하 신부

연중 제25주일 (루카 8, 16~18) : 등불의 비유
발행일 : 2006-09-24 [제2518호, 6면]

- 종이 되어야 갈 수 있는 하느님 나라 -

어린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르 9, 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말씀의 어린이는 어떤 어린이이겠습니까?

한 어린이가 있었습니다. 동네 어른은 이 어린이가 귀여워 지나칠 때면 늘 오백원 짜리 동전과 백원 짜리 동전을 던져 둘 중 하나만을 가지라고 합니다. 그럴 때면 아이는 언제나 백원 짜리 동전만을 줍습니다. 동네 어른은 그것이 재미 난지 이 아이를 만나면 그 일을 되풀이합니다.

어느 날 아이가 친구와 함께 놀 때 동네 어른이 지나가다가 여느 때와 같이 오백원과 백원 짜리 동전을 던집니다. 그러자 아이는 백원 짜리 동전을 줍고 어른은 기쁘고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지나갑니다. 지켜보던 친구가 답답하다는 듯이 오백원 짜리가 더 큰돈인데 왜 바보같이 백원 짜리 동전을 줍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러자 백원 짜리 만을 줍던 아이가 말하길, “내가 오백원 짜리를 주우면 저 아저씨가 재미있어 계속 하시겠냐?” 하더랍니다. 이쯤 되면 어린아이가 어른 위에서 어른을 가지고 노는 꼴이 됩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린이란 이 같은 계산적인, 이해 타산적인, 이기주의의 인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 천진난만한 순수 그 자체여야 하는 것입니다. 도무지 자기 계산적이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바보란 소리를 들어도 순수와 사랑이 넘쳐야 하는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으로 유명하신 신영복 교수님은 20년 20일을 감옥살이를 하실 때 조카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같은 글을 쓰셨습니다. “거북이를 얕보고 잠을 잔 토끼도 나쁘지만 그러나 잠든 토끼 앞을 살그머니 지나가서 1등을 한 거북이도 나쁘다. 공부 못하는 친구를 얕보는 토끼 같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친구를 따돌리고 몰래 혼자만 1등을 하는 거북이 같은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잠든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자. 그런 멋진 친구가 되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와 꼴찌는 바로 이 같은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하여 봅니다. 천국은 반드시 함께 가는 곳입니다. 자신의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다고 자만하거나 개인주의적인 이기심으로는 갈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하는 가장 낮은 자리인 종의 자세를 지녀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 얄팍한 자기 계산적이 아닌 이들을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꼴찌와 종이 되는 삶

소화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편지에서 이토록 갈망하며 글을 씁니다.

“당신의 어린 딸이 언제까지나 보잘것 없고,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오로지 예수님만이 보실 수 있는 작은 모래알로 남아있도록, 그리고 이 모래알이 점점 더 작아져 드디어‘무(無)’로 돌아가 버리도록 기도해 주세요.”(편지 49)

꼴찌와 종이 되는 삶이란 이 지상에서 나를 내세우는 삶이 아니라,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예수님만이 봐주신다면, 끝까지 어두운 구석에서 사랑하며 살더라도 빛과 희망을 잃어 버리지 않는 삶을 의미합니다.

비록 세상의 모든 영예와 부귀를 잃었어도 예수님만을 모신다면 그 기쁨으로 내 자신이 작아지는 삶에 희망을 둘 수 있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말씀처럼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 30)는 울림이 끊임없이 뇌리에 울려 퍼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 세례자 요한의 꼴찌의 정신, 종의 정신이 구세주를 뵙게 되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 27)

이 같은 낮은 자세, 주님을 주님의 자리에 두고 자신은 밑에 있어야 하는 자세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요한 1, 34)

자주 우리는 여러 분야에서 첫째가 되려고 온갖 편법과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그 자리에 오릅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 자리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허무에 불과 하였습니다. 언제나 세상이 주는 첫째의 자리는 몰락이라는 어둠이 함께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나 꼴찌의 자리에서 섬김과 종의 자세로 살았던 이들이 마지막에 반드시 성공의 자리에 올랐던 것입니다.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상의 하느님 나라 건설을 위해 일하고 있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의 작음이, 꼴찌의 삶이, 종의 삶이 세상을 사람 사는 냄새가 나도록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주님께서는 바라고 계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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