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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5) 일편단심 신앙을 되찾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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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5) 일편단심 신앙을 되찾자/배광하 신부

연중 제24주일 (마르코 8, 27~35) : 수난과 부활을 처음 예고하시다
발행일 : 2006-09-17 [제2517호, 6면]

- 위대한 신앙 -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

지난 8월에는 중국의 북경과 연변, 그리고 백두산에 다녀 왔습니다. 북경에서는 북당성당과 남당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천주실의>의 저자이신 마태오 리치(1552~1610) 신부님의 묘소를 참배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의 기원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은인이신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묘소 앞에서는 신앙의 신비와 복음 전파의 오묘한 섭리에 대하여 묵상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1552년 이탈리아 태생이신 신부님께서는 예수회 설립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하셨으며 1580년 예수회 사제로 인도에서 서품 되셨고 이후 모진 고난 속에 약 20년 가까운 중국 베이징 진입 노력 결과, 1601년 성공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황제의 총애를 받는 궁정 학자가 되시어 그리스도의 사도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시면서 각종 교리서와 중국 고전 등을 라틴어로 번역하시게 됩니다. 리치 신부님은 복음 전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핵심인 선교 국가의 참된 이해와 존경, 그들의 풍습과 문화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지니셨던 분이셨습니다. 그때문에 중국의 공자 숭배와 조상제사 문제, 중국의 수준 높은 종교 심성에 대하여 깊이 연구하셨고 이해하셨습니다.

이같은 선교에 큰 성공을 거두어 1610년 5월 11일 선종하실 당시 약 2천 명의 개종자가 있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명나라 신종 역시 신부님의 죽음을 국장으로 치룰 것을 명령하였고, 중국인들은 “성인, 성인, 성인이시여!”라고 그분의 죽음을 애통해 하였다고 합니다.

이같은 큰 인물이 중국에 들어 오시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한국 천주교회의 전래를 위해 하느님께서 이미 예비하신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저서인 <천주실의>를 조선의 실학자들이 읽게 되고 급기야 신앙을 받아 들이는 계기를 마련하였으니 말입니다. 마태오 리치 신부님은 중국의 풍습과 문화를 이해 하셨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 신앙에는 끝까지 포기 하지 않으셨고 그 유일 신앙이 조선에 전해진 것입니다.

“나라에도 주인이 있는데, 천지에 유독 주인이 없겠습니까? 나라가 하나의 군주에 통섭되는데, 어찌 천지에 두 주인이 있겠습니까?”(<천주실의> 마태오 리치 신부님 서문)

선조들의 굳건한 신앙심

신앙이 곧바로 조선에 전해져 조선 초기 천주교회의 창설자 중 한 분이신 정약종 선조께서는 <주교요지>교리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한 집에 가장이 하나이요, 한 고을에 관장이 하나이요, 한 도에 감사가 하나요, 한 나라에 임금이 하나이니, 만일 한 고을에 두 관장이 있으면 고을 일이 되지 아니할 것이요, 한 도에 감사가 둘이 있으면 도의 일이 되지 아니할 것이요, 한 나라에 두 임금이 있으면 나라가 어지러울 것이라.

한 천지에도 반드시 임금 한 분이 계실 것이니, 만일 두 임금이 있다 하면 천지 괴관할 것이라. <중략> 천지 개벽한 후로 이날까지 일정한 법이 있어 만고에 바뀌지 아니하니 반드시 한 천주가 계셔 마련하시기에 온갖 법이 다 한 곬으로 나는 것이라.”

이같은 한 분이신 주님께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임금과 나라의 법이 하느님의 법과 부딪칠 때 신앙의 선조들은 주저함 없이 하느님의 법을 따랐던 것입니다. 때로는 온갖 투옥과 고문 중에도, 때로는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님을 용감히 증거 하였던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로마 8, 35)

이 말씀은 또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께서도 순교 직전 옥중 서한에서 밝히신바 있으십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세상에 내려 친히 무수한 고난을 받으시고 괴로운 가운데로조차 성교회를 세우시고 고난 중에 자라나게 하신지라, 그러나 세상 풍속이 아무리 치고 싸우나 능히 이기지 못할지니, <중략> 이런 황황한 시절을 당하여, 마음을 늦추지 말고 도리어 힘을 다하고 역량을 더하여, 마치 용맹한 군사가 병기를 갖추고 전장에 있음 같이 하여 싸워 이길지어다.”

주님께 향한 일편단심의 신앙, 그 놀라운 신앙을 순교의 선조들은 보여 주셨습니다. 실로 주님을 믿는 강한 믿음은 세상의 온갖 것을 이기게 만듭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신앙인들도 무엇을 첫 자리에 두어야 하는지를 또다시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남녀, 노소, 빈부, 귀천의 모든 장벽을 뛰어 넘어 보편 사랑의 삶을 사셨던 순교자들의 모습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모두를 받아 들이고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끈끈한 유대의 정을 나누며 고난을 극복하신 순교자들의 삶이 오늘 우리들 신앙 안에서도 분명 재현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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