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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1: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

宗敎哲學

by 巡禮者 2012. 8. 18.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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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1)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
(The Seven Storey Mountain)
 
방황하는 젊은이라면 '칠층산'으로 가라
 
 
평화신문은 2009년 새해를 맞아 한국가톨릭문인회(회장 조창환 토마스 데 아퀴노)와 공동으로 '가톨릭교회의 숨겨진 영적 보물'이라 할 고전과 문학작품을 순례하는 새 기획 '고전의 향기에 취하다'를 시작한다. 가톨릭 문인과 학자, 수도자, 성직자 기고를 통해 신자들이 가톨릭 고전의 영적 샘에서 보화를 퍼올리기를 기대한다.
 
 
성찬경(시인, 예술원 회원)
 
 
▲ 국내에선 정진석 추기경이 번역해 바오로딸에서 출간한 토마스 머튼의 소설 '칠층산'
 
 
토마스 머튼의 「칠층산(The Seven Storey Mountain)」은 웬만큼 독서를 하는 사람치고 안 읽은 이가 거의 없다. 그래서 좋은 화제가 되겠다 싶어 몇 마디 얘기를 꺼내보면 의외로 책의 내용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어찌된 영문일까?
 
좋은 책은 한 번만 읽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닐진대 안타깝기만 하다. 두 번, 세 번, 아니 여러 번 읽을수록 좋다. 매번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토마스의 이 책은 방황하고 고뇌하는 젊은이와 그러한 젊은이를 하느님께서 어떻게 구원해 주시는가를 참으로 감동적으로, 동시에 매우 문학적으로 저술한 명저다. 어떠한 설명도 책에 쓰인 본문을 직접 음미하는 것만 못하다. 그래서 그러한 감동적 장면을 몇 군데 뽑아서 음미해 본다.
 
토마스의 아버지는 뉴질랜드인이고, 어머니는 미국인이다. 부모가 모두 화가로 파리에서 만나 혼인해 토마스를 낳았는데 아버지에게서는 세상을 바로 보는 고결한 성품을, 어머니에게서는 다재다능한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작가 자신은 술회한다.
 
토마스가 여섯 살 되던 해 어느 날 일이다.
 
"아버지가 편지 한 통을 나에게 주었다. 그것은 어머니가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어머니는 자신의 죽음과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쓰고 있었다. 나는 집 뒤뜰에 있는 단풍나무 아래에서 그 편지를 읽고 또 읽고 결국 무슨 뜻인지 알아내고야 말았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과 절망이 무겁게 밀려왔다. 그것은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릴 수 있는 어린 아이의 슬픔이 아니었다. 몹시 당혹하고 침통한 어른의 슬픔이었다.…"(정진석 추기경 번역 이하 같음).
 
이같이 어린 토마스는 일찌감치 인생, 그 사바세계의 신고를 겪는다. 그 후 토마스는 방랑벽이 있는 부친을 따라 이곳저곳을 전전했고, 동생 폴은 외가에서 자랐다. 중ㆍ고교 교육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받을 무렵 토머스 나이 16살 때 부친마저 뇌종양으로 런던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토마스는 그때 고아가 됐다.
 
집도 없고, 가족도 없고, 나라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친구도 없고, 하느님도 없고, 천당도 없고, 은총도 없고 하여간에 아무것도 없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1학년을 마치고 외조부의 나라 미국에 이민을 오게 된 것을 몹시 기뻐한 토마스는 특히 활력이 넘치는 뉴욕과 컬럼비아대학을 사랑하게 된다. 영문과에서 마음에 드는 교수와 친구들에 둘러싸여 학위도 받고, 또 시와 소설 등 많은 습작을 해 장차 문사가 될 기초를 단단히 다졌다.
 
토마스는 개신교 집안 분위기에서 컸다. 어머니는 퀘이커 교도였다. 아버지는 종교적 성향이 매우 강한 편이었지만, 특별한 교회에 소속되지는 않았다. 이 무렵 토마스는 출세주의자였고 이따금씩 강한 종교적 충동도 느꼈으나 그래도 무신론자에 가까웠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서도 저자 에티엔느 질송이라는 이름에 끌려 「중세철학의 정신」이란 책을 읽다가 스콜라 철학자들이 예사로 쓰는 무미건조한 용어 중의 하나인 자존성(自存性)이라는 단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혀 새로운 개념을 발견했다.
 
"이 개념 덕분에 나는 가톨릭 신앙이 비과학적 시대의 애매모호하고 미신적인 유물이 결코 아님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그런 줄로 믿어왔었다. 그러나 이와는 정반대로 가톨릭 신앙의 하느님 개념은 깊고도 간명하며 단순하고도 명확한 것이었다."
 
이 정의의 핵심을 가리키는 말이 라틴어로 'aseitas', 영어로도 그냥 음역하여 'aseity'다. 자존성(自存性)이다. 하느님은 "나는 있는 자이다(Ego sum qui sum)"는 말씀과 같이 그냥 있는 존재이며, 존재 자체이며, 따라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연속되는 인과율에서 벗어나서 계신 분이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이 하느님 자신의 원인이라는 논리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계신 분이다. 하느님은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존재 그 자체, 존재하는 순수 현실유(現實有)다. 이런 분은 오직 하느님 한 분이 계실 뿐이다. 하느님에 대한, 일반 논리를 뛰어넘는 이러한 정의(定義)는 그 자체가 완벽한 것이다.
 
하느님에 대한 이러한 절대 논리에 깨끗이 승복하고, 무조건적으로 하느님께 모자를 벗고 귀의하는 청년 토마스는 얼마나 순수하고 선량하고 총명한가! 구질구질한데라곤 추호도 없는 토마스의 이러한 결심과 선택을 지켜보면서 거의 미학적인 쾌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아마 이 부분이 이 책의 숨은 (화려하게 극적이 아니기 때문에) 정점이 아닌가 싶다.
 
가톨릭으로 개종하기로 결심한 후 그는 어느 날 미사에 (영세 전이지만) 참례한다. 첫 미사를 경험하고 난 후의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다시 브로드웨이를 한가하게 걸었지만 세상에 새로 나온 기분이었다. 왜 그렇게 행복하고 평화스러웠는지, 왜 생의 보람을 새삼 느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는 확실히 세상에 새로 태어난 것이었다. 컬럼비아의 못 생긴 건물까지도 다르게 보였고, 폭력과 소란이 늘 판을 치던 그 거리 구석구석까지도 어디나 평화로웠다. 111번가 어둠침침한 작은 차일드 식당 밖 지저분한 생나무 울타리 뒤에 앉아 아침을 먹노라니 신선이 땅에 내려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세례를 받기로 결심을 했고, 나아가 수사 신부가 될 결심을 한다. 마침내 봉쇄수도원인 트라피스트 수도회 수사가 됐지만, 단 하나뿐인 동생 폴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사하는 장면에서 이 소설은 끝난다.(전사하기 전에 폴도 세례를 받도록 토머스가 인도했다.)
 
1948년 이 책이 출판된 이래 이 책은 전 세계 거의 모든 언어로 번역됐다. 가히 몇십 년 동안 꾸준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이 책은 20세기에 쓰인 「고백록」(아우구스티노 성인의)이라는 평을 듣는다. 매우 타당한 비교다. 토마스 머튼의 문체는 간결하고 뜻이 분명하면서도 그 뜻이 또 깊다. 가히 이상적 문체라 할 수 있으며, 꼭 수도자가 지향할 법한 문체다. 나는 머튼의 글을 읽을 때 머튼의 지성이 어딘지 모르게 T. S. 엘리어트의 지성과 공통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
 
토마스의 이 책은 소설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전기적(傳記的)이고, 전기라 하기에는 너무도 재미가 있어 소설적이다. 전편을 통해서 방황하는 인간의 고뇌와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절묘하게 부각돼 있다.
 
 
토마스 머튼은
 
1915년 1월 31일 프랑스 남쪽에서 태어나 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의 처음을 프랑스와 영국에서 보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1년을 수학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얻었다. 그리고 보나벤투라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이 무렵 이미 재능 많고 총명한 그는 문사로서 장래 성공할 것을 보증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신론자에 기울기도 했고, 삶의 쾌락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삶의 덧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수사 신부가 되기로 결심한다.
 
1938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1941년에 미국 겟세마니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입회했고, 1949년 사제품을 받았다. 1968년 12월 10일 그는 태국에서 감전사로 별세했다. 시와 소설, 수상집 등 50여 권에 달하는 그의 저서 중 일부를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번역이 나왔으며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1940), 「명상의 근원(Seeds of Contemplation)」(1949), 「침묵의 삶(The Silent Life)」(1957), 「삶과 거룩함(Life and Holiness)」(1963), 「트라피스트 수도 생활(Cistercian Life)」(1974), 「사랑과 삶(Love and Living)」(1979) 등이다.
 
[평화신문, 제1003호(2009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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