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향기에 취하다] (3)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시련의 밭에서 핀 양심과 사랑의 꽃, 주님 은총 햇살 가득
송원희(마리아, 소설가)
▲ 국내에선 하서출판사에서 번역 발간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표지 이미지.
"이 세상에 빈부 격차가 남아있고, 가난 때문에 사람들이 삶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굶주림으로 여자들이 몸을 팔고, 빛이 닿지 못하는 곳에서 어린 아이들이 위축돼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한, 이 소설은 오래도록 살아 있을 것이다."
문호 빅토르 위고는 총 1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의 서문을 통해 빈부 문제에 대한 자신의 오랜 생각을 털어놓는다. 이 빈부격차 문제는 이후 20, 21세기를 관통하는 전 세계적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 작품은 그래선지 일찍부터 「장 발장」 또는 「레 미제라블」이라는 표제로 국내에 소개돼 많은 이들에게 읽혔다.
쌉싸래한 감동을 주는 이 소설은 1862년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로 번역돼 많은 독자를 확보했고, 성경의 뒤를 이었다고 할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이 듬뿍 담긴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프랑스 혁명기를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과 그 체취를 세밀하고도 밀도있게 묘사했다. 악에서 벗어나 자비로운 마음으로 선량하게 살아가려는 사람의 이면을 추적하는 심리 묘사는 마치 탐정소설과도 같은 묘미도 있다.
또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는 사제나 수도자들의 삶 또한 읽은 이들로 하여금 끝모를 감동과 함께 심신의 정화를 불러 일으킨다.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작가 중 대표주자인 위고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레 미제라블」은 밑바닥 인생에서 허덕이는 비참한 서민들의 이야기다. 표제 그대로 '불쌍한 사람들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허기진 가족과 어린 조카들을 보다 못한 한 청년이 가게에서 빵 하나를 훔친 죄로 19년간 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하는데서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장 발장으로, 전과자에 더할 나위 없이 냉랭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하룻밤 쉴 곳조차 없이 방황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지치고 마음까지 거칠어진 그는 마지막으로 성당을 찾아가 하룻밤을 청한다. 미리엘 신부 사제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온 그는 앞길이 막막해 사제관에서 나올 때 은촛대 두 개를 훔친다. 때마침 성당 앞을 지나던 경찰이 그를 수상히 여겨 사제관으로 데려 간다. 미리엘 신부는 간밤에 잠을 자고 간 나그네가 촛대를 들고 경찰과 같이 온 정황을 눈치챈 뒤 웃으며 "왜 그것만 가지고 갔느냐? 여기 두 개도 내가 가져가라고 했으니 이것도 가지고 가라"며 나머지도 그에게 내어준다.
뜻밖에 온정어린 신부의 말에 장 발장은 그 순간 오래동안 잊었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는 미리엘 신부의 따뜻한 온정에 돌연 한줄기 빛이 자기 머리 위에 비치는 것을 느낀다. 그 앞에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속죄의 은총이 온몸으로 가득히 번지며 새롭게 태어난다. 그 순간 그는 사람의 마음을 풀어주고 180도로 전환시켜 주는 것은 법이 아니라 사랑과 관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수십 년 뒤 장 발장은 어느 해변 산업도시 공장 지대에서 이름을 마드랫으로 바꿔 일을 하며 성공한다. 성실과 정직으로 마침내 그는 공장 하나를 자영하기에 이르렀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일을 하고 종업원들에게 자비와 선한 마음으로 대하니 공장은 날로 번성하여 부를 누렸다. 장 발장은 그 부를 약자와 빈곤한 서민들을 위해 베풀었고, 자연스럽게 그는 그 일대 주민들에게 존경을 받으며 시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장 발장을 시기심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시하는 자가 나타난다. 쟈발이라는 경시관이었다. 정체불명 나그네의 출세에 의구심을 가진 그는 장 발장의 본색을 찾고자 혈안이 된다. 그 때 그의 공장에 환티눈이라는 여자가 일을 구하러 온다. 과거 매춘부였던 그는 남편에게 버림받은 뒤 아이 하나를 데리고 나와 숨어다니다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이를 안 쟈발 경시관은 그녀를 체포해 법원에 넘긴다.
장 발장은 법원에 출두해 환티눈을 변호해 구해내고 병든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켜 준다. 이에 쟈발 경시관은 분에 못이겨 마드랫의 원래의 이름이 장 발장이라는 것과 전과자라는 사실까지 알아내고, 법원에 고발한다. 때마침 한 절도범이 잡혀왔는데, 그의 이름이 장 발장으로 '동명이인'이었다. 장 발장에게는 뜻밖에 찾아온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을 이대로 묵인하면 자신은 영원히 원래 신분을 속인 채 살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장 발장의 양심에 미리엘 신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신을 대신해 남을 희생시킬 수 없었던 장 발장은 고민 끝에 명예도, 부도 다 버리고 법정에 나가 자신이 19년 옥살이한 한 전과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시장직에서 물러난다. 다시 전과를 속인 죄목으로 구속된 그는 옥살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장 발장은 병원에 입원해 자기를 기다릴 환티눈이 가엾어 탈옥을 해 병원을 찾아간다. 한 수녀의 헌신적 간호를 받고 있던 환티눈은 자신의 어린 딸 고제트를 부탁하며 숨을 거둔다. 탈옥죄로 다시 체포된 그는 감옥으로 이송돼 옥살이를 한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환티눈이 부탁한 어린 딸이 걱정이 된 그는 재차 탈옥해 고제트를 찾아간다. 8살 고제트는 어른들의 학대와 혹사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이에 장 발장은 고제트를 데리고 수도원으로 피신한다. 10년 세월이 지나자 장 발장은 수도원장의 허락을 받아 고제트를 데리고 나온다.
장 발장의 사랑과 훈육으로 아름답게 성장한 고제트는 사회 개혁을 주장하면서 왕당에 도전하는 공화주의자 청년 마류스와 사랑에 빠진다. 장 발장은 사랑하는 고제트가 개혁의 소용돌이에 말려드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사랑하는 고제트를 위해 참아야 했다. 그런데 마류스가 시위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고 체포 직전에 이른다.
장 발장은 또 다시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기회에 봉착한다. 결국 그는 부상한 마류스를 등에 지고 파리 하수구로 피신해 허리까지 차오르는 하수구 물 속으로 들어가 왕당의 추격을 벗어나 고제트와 마류스를 혼인시킨다.
그리고서 장 발장은 두 사람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다. 그의 고백을 듣고 놀란 마류스는 그간 자신을 돌봐준 어르신이 오래 전 탈옥한 수배자라는 말을 듣고 크게 실망해 고제트를 데리고 장 발장 곁을 떠나버린다. 그들이 떠난 후 장 발장은 외롭고 심신이 쇠잔할 때로 쇠잔해져 몸져 눕고 만다.
한편 마류스는 장 발장의 진솔한 고백에 실망하고 떠난 것을 후회하고 다시 장 발장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노쇠하고 병든 그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빈다. 하지만 장 발장은 오히려 그들을 위로하며 산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주고 자신은 하느님 은총으로 행복했다고 털어놓으며 마류스 부부를 기도로 축복하고 눈을 감는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숨진 장 발장의 온화한 얼굴 위로 미리엘 신부의 은촛대가 찬란하게 비친다.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1802년 2월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나 시와 희곡, 소설 등을 다작했다. 나폴레옹 휘하 장교였던 아버지를 따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주로 파리에서 살며 많은 작품을 썼다.
어릴 적부터 문학에 심취한 그는 1817년 15살 때 아카데미 프랑세스 콩쿠르에 입상, 자신의 재능을 드러냈다. 이후 여러 권 시집과 환상소설, 희곡 등을 발표하며 당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초기엔 가톨릭적 색채가 농후했으나 훗날엔 점차 자유주의적 경향이 현저했다. 프랑스 의회 상원의원으로 선출되는 등 문학 외적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했고, 1851년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에 항거하다가 영국으로 추방당해 19년간 망명생활을 했다. 이 시기 「레 미제라블」을 비롯해 「노틀담 파리」, 「바다의 노동자」, 「웃는 남자」(이상 소설), 「징벌」, 「명상시집」, 「세기의 전설」(이상 시집) 「성주」(희곡)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1870년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으로 몰락하자 다시 파리로 돌아와 1885년 5월 22일 향년 83살로 타계할 때까지 프랑스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고, 사후 프랑스의 위대한 문인들과 함께 팡테옹에 묻힌 그의 작품에는 인류의 진보에 대한 낙관적 신뢰와 이상주의적 사회 건설에 대한 불 같은 정열이 깔려있다. 1985년 위고 서거 100주기를 맞아 파리 시민들이 "빅토르 위고는 우리 가슴에 아직도 살아있다"는 글귀를 가슴에 써 붙이고 행진을 벌이며 대대적 행사를 벌였을 만큼 위고는 존경을 받고 있다.
[평화신문, 제1009호(2009년 3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