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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혹시 싸구려 은총을 찾는가?/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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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1) 혹시 싸구려 은총을 찾는가?/배광하 신부

연중 31주일 (마르코 12, 28ㄱㄷ~34) : 가장 큰 계명
발행일 : 2006-11-05 [제2523호, 1면]

- 목숨과 정신, 그리고 내 자신처럼 -

하느님 사랑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복음전파가 시작되면서 순교의 역사는 함께 따라 다녔습니다. 순교자들은 모진 박해 속에서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목숨까지 바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순교자들이 북극과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은 물론, 노예로부터 시작하여 왕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계층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시간과 공간과 계층을 초월한 이 같은 하느님 사랑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신앙이 놀라울 뿐더러 하느님 섭리의 손길이 아니 미치는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때문에 신앙은 진정 인생의 소중한 결단이며 바꿀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과 신분의 차이에도 불과하고 모든 순교자들의 삶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공통점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 가르침과 똑같이 닮았다는 것입니다.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 29~31)

그리고 그분들은 이 말씀에 따라 살면서 결코 죽음과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삶으로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이 그리도 기뻤기에 생명을 바쳐서라도 끝까지 따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거친 바다에 아무도 도와 줄 이 없어 보이는 절망의 풍랑 속에서도 주님만은 다가오시어 내 손을 붙잡아 건져 주신다는 희망의 믿음이 있었기에 진정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2천 년 교회의 역사에서 그 같은 확실한 증표의 모습을 사셨던 순교자들의 삶을 보고 배웠던 우리들이 세상 풍랑에서 하느님 사랑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일 때, 주님께서는 풍랑을 가라앉히셨던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꾸짖으실 것입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 40)

또한 베드로 사도에게 하셨던 같은 꾸중의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 31)

다시금 혼돈의 신앙과 믿음이 아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주님께 향한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하는 사랑의 믿음이 이 시대에 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 사랑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히틀러에 반대하다 처형당한 독일의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는 쿠바의 독일인 공동체에서 ‘약속의 땅’을 보았지만 들어가지는 못했던 ‘모세’에 관하여 설교하면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엄청난 실업자들과 전 세계에 걸쳐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과 중국의 기근, 인도의 억압받는 이들, 그리고 우리의 불행한 조국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자기 혼자 태연하고도 무관심하게 약속된 땅으로 들어가겠다는 사람이 과연 있겠습니까?”

그는 또한 나치 독일에 의해 수없이 희생당하고 있는 유다인들을 위해 이렇게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유다인들을 위해 소리 높여 외치는 자만이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를 자격이 있다.”

그가 가장 크게 외친 말은 ‘싸구려 은총’이었습니다. 1937년 출판된 ‘제자됨의 의미’란 책에서 그는 ‘싸구려 은총’에 대해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싸구려 은총이 우리 교회의 치명적인 적이다. … 은총이 싸구려 행상인의 물건인양 시장에서 팔리고, 죄의 용서라는 것도 할인된 가격으로 내다 팔고… 가치 없는 은총, 노력 없이 은총만을… 그러한 교회가 있는 사회는 죄를 손쉽게 은폐해 버린다. 죄로부터 벗어나려는 진실된 의지도 없다. 은총이면 만사 해결이라 떠들며… 그래서 모든 것은 현상유지 될 수 있게 된다.”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데, 그들에 대한 가장 큰 계명인 ‘사랑’을 무시한 채 열심한 신앙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착각, 그것이 싸구려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고통받는 이웃을 내 몸처럼 아끼지는 않더라도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껴야지, 그렇지 않고서 어찌 천국을 꿈꿀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살아서는 세상의 온갖 안락을 누리다가 죽어서는 천국의 한 자리까지 차지하려는 신앙, 그것이 싸구려 은총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이 같은 싸구려 은총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양다리 걸치기 식의 신앙,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지 않으면서 구원을 바라는 ‘싸구려 은총’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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