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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9)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자/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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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생각] (499)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자/배광하 신부

연중 제29주일 (마태오 28, 16~20) :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다
발행일 : 2006-10-22 [제2521호, 6면]

- 복음 선포자로 살아가기 -

제 친구를 소개합니다

제 신학교 입학동창 신부는 한국외방선교회 소속 사제입니다. 현재는 캄보디아 동북부 지방 ‘스웡’이라는 소읍에서 본당신부로 6년째 선교사 사목을 하고 있습니다. 예전 편지의 글에는 마을에 홍수가 나 강 상류에 양식하던 악어 떼가 탈출하여 아이들과 즐겁게 물놀이하던 강에 무서워 들어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을 적었습니다.

친구는 캄보디아에서 면적이 가장 큰 도(道)인 ‘몬돌끼리’까지 맡아 사목하고 있는데, 해발 1천 미터의 산악지역이라고 합니다. 본당에서 공소까지의 거리는 300㎞나 된다고 합니다. 픽업트럭으로 엉덩방아를 찧어가며 시골길을 달려 도청 소재지에 도착하면 다시 오토바이로 갈아타고 35㎞를 또다시 달려가야 공소가 나온다고 합니다.

진흙탕에 넘어지고 개울을 건너고 산을 넘고 폭포를 지나야 하는 십자가의 길을 달리고 걷는 것이지요. 저의 머릿속에는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신학생 때 그리 튼튼해 보이지 않던 친구가 6년 동안 그 일을 아프지 않고, 지치지 않고 잘 해내고 있는 것이 그야말로 “천주께 감사!”입니다. 친구의 발걸음 걸음을 생각하면 선교사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로마 10, 14~15)”

친구를 생각하면 예전 어느 선교사의 글이 자꾸 머리에 맴돕니다. 그분은 아프리카에서 선교하면서 어느 날부터인가 발가락 사이에 작은 물집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무척 가려웠다고 합니다. 해서 날카로운 칼로 소독을 하여 그 물집을 베어 보니 수없이 작은 애벌레들이 우글거리는 것을 보고 경악해 하셨다고 합니다. 애벌레 유충이 발가락 땀구멍 속으로 들어간 것이지요.

친구는 그 같은 일이 없는지, 풍토병에, 향수병에 아파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됩니다. 친구는 어느 글 끝에 이렇게 썼습니다.

“그나저나 나 여기 캄보디아에 와서 잘하고 있는 건가?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지? 그분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 … 마루 밑에서는 쥐들이 먹이를 놓고 싸우는지 유난히 찍찍거립니다. 몸도 여기저기 근질거립니다. 묵은 담요에 자리를 잡은 벼룩들이 틀림없습니다. 모기장을 들추고 마당으로 나왔습니다. 밤하늘을 우러르니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별, 별들….

‘네가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 보아라. 너의 후손이 저렇게 많아질 것이다.’ (창세 15, 5)”

자신이 없습니다

예수님 지상 공생활 마지막 말씀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9~20)였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선교사로 나가 그 말씀을 따를 자신이 제게는 없습니다.

더구나 여름을 어느 계절보다 끔찍이 싫어하는 저는, 친구와 같이 더운 나라에서 벌레가 우글거리는, 습한 곳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다만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해마다 전교의 달 10월의 첫 시작일인 1일이 선교의 수호자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대축일이라는 사실입니다.

15세의 나이로 가르멜 봉쇄 수녀원에 입회하여 24세의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삶을 사셨던 소화 데레사 성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한 발짝도 세상 밖으로 나가신 적이 없었던 성녀를 교회가 복음 선포의 선교 수호자로 정한 까닭은 저와 같은 그리스도인들 때문이 아닌 듯 싶습니다. 그것으로 작은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더욱 짐은 무겁습니다. 비록 봉쇄 수녀원 안에 계셨으나 온 세상을 품에 안고 절절히 복음 선포와 사랑하는 예수님을 세상 모든 사람이 알고 행복해 지기를 원하셨던 성녀의 삶 때문입니다.

모두가 복음 선포자로 해외에 나갈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선교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선교사들을 돕는 분들도 계셔야 하고, 가르쳐서 보낼 분들도 계셔야 하며, 그분들의 모든 선교사업에 기도와 희생으로 함께 동참하시는 분들도 계셔야 할 것입니다.

진정 수많은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복음선포에 앞장서시는 모든 선교사들을 위하여 우리 또한 기꺼이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온 우주를 한 가슴 가득히 애정의 눈길로 안아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우리 또한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 역시 선교사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전교 주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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