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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교회의 주춧돌이신 예수님/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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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교회의 주춧돌이신 예수님/배광하 신부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마태 16, 13~19)
발행일 : 2008-06-29 [제2605호, 6면]

- 영원한 하느님의 교회 -

지상에서 교회의 사명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현대세계의 그릇된 구원관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 하셨습니다. “세계의 지배질서를 부인하고 몰락을 통해 구원받기를 희망하는 묵시록적인 경향은 결코 단 한 번도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었다. 18세기부터는 종교와 별도로, 혹은 종교에 반대하면서 이러한 경향이 새롭게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이 극단적인 형태로 표출된 경우를 우리는 마르크시즘에서 보게 된다.”

그런데 빠르게 변화되는 세계 안에서 이제는 비단 마르크시즘 만이 아니라 더 많은 무신론과 다신론적인 경향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가히 다원주의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분명 하느님 말씀 안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필리 3, 20)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를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사실 땅 위에는 우리를 위한 영원한 도성이 없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올 도성을 찾고 있습니다”(히브 13, 14).

그렇다면 교회가 지상의 평화가 아닌 미래에 오게 될 하느님 나라만을 꿈꾸며 지상의 삶을 부정적인 모습으로 가르쳤는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구약의 야곱은 천국 사다리의 꿈을 꾼 뒤 하느님 말씀을 들었을 때 이렇게 외칩니다.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의 문이로구나”(창세 28, 16~17).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 21).

따라서 교회는 끊임없이 이 지상에서부터 하느님 나라를, 그 참된 평화의 나라를 건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같은 노력 뒤에는 수많은 반대 세력과 유혹이 있어 왔습니다. 또한 많은 이단과 박해를 견디어 내면서도 평화를 심으려 하였습니다. 고난 가운데에도 끝내 중심을 잃지 않고 오늘날까지 견디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희망의 말씀을 언제나 교회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 18).

하느님의 힘으로

하늘나라의 열쇠는 반드시 베드로 사도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분명 가톨릭 교회의 우뚝 솟은 두 거봉은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러나 두 분 사도의 출생과 성격은 너무 대조적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어부 출신이며 많이 배우지 못한 분이신 반면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당대에 있는 집안의 출신이며 정통 바리사이인으로 배움으로는 수도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을 스승으로 모시고 엄격한 율법에 따라 교육을 받은 분이셨습니다.

성격으로 말하자면 베드로 사도는 우유부단함과 덜렁거림과 쉽게 판단을 내리며 겁이 많았던 분으로 성경은 소개합니다. 반면 바오로 사도는 깐깐하며, 다혈질적이고 끈기가 있었으며 타협을 모르는 불같은 성격을 지닌 분이십니다. 그러니 바오로 사도께서 천국의 열쇠를 쥐고 계시면 아마도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 많지 않을 듯 싶습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께서 천국의 열쇠를 쥐고 계시기 때문에 나약하고 쉽게 유혹에 빠지는 죄 많은 우리들에게도 실낱같은 구원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허황된 말장난에 불과하지만 부족한 인간 가운데에서 당신의 엄청난 구원 역사를 이룩하셨다는 것은 약한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 나약함도 나약함이지만 그토록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모여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교황님을 중심으로 2천 년이라는 긴 세월 교회를 지탱해 올 수 있었던 것도 기적이며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원하십니다. 획일적인 강제성 안에서의 일치는 원하지 않으십니다.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의 성격이 있는 것이고, 바오로 사도는 바오로 나름대로 성격이 있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서로 다른 장점과 단점 중에서 키울 것은 키우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며 하느님의 집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가 교회의 반석으로 불림을 받았지만 결국 중심 주춧돌은 예수님이십니다. 이 돌을 중심으로 교회의 구성원이 모이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 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1베드 2,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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