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586) 희망으로 구원 받은 우리/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8:41

본문

 

(586) 희망으로 구원 받은 우리/배광하 신부

연중제16주일 (마태 13,24~43)
발행일 : 2008-07-20 [제2608호, 6면]

- 내버려 두어라 -

묵주기도의 추억

신학교 시절 저녁 잠자리에 들 때 베개 옆에 있는 묵주를 들고 기도를 바치려 하면 왜 그리도 빨리 잠이 드는지, 제게 묵주기도는 수면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내게는 성모신심이 너무도 부족하구나”를 깊이 고민하여 영성지도 신부님과 면담하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 이 같은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네가 잠자리에 들어 묵주기도를 바칠 때, 만약 일단을 바치다 잠이 들든지, 혹은 삼단을 바치다 잠이 들든지 못 바친 나머지 기도는 네 수호천사가 내려와 마저 다 바쳐주니 걱정할 것 없다.”

아주 어린아이와 같은 대화처럼 들리시겠지만, 그때는 정말 안심이 되었던 신부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난 뒤 우연히 성경을 읽다가 로마서의 말씀에서 섬광처럼 빛을 발하는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올바른 방식으로 기도할 줄 모르지만, 성령께서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 26)

하느님이신 성령께서도 신앙인이면서도 기도를 게을리하였거나, 참 기도를 드릴 줄 몰랐던 우리를 위하여 깊이 탄식하시며 기도해 주시는데, 인간을 돌보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파견하신 수호천사가 우리 대신 기도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정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부족한 처지를 그냥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설령 죄를 짓는다 하여도 (그것을 믿고 죄를 지어서는 안 되겠지만) 참고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주님은 성경에서 입증해 주십니다.

지혜서의 저자도 증언하여 말합니다.

“당신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의인은 인자해야함을 당신 백성에게 가르치시고,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 주셨습니다.”(지혜 12, 19)

베드로 사도는 또한 가르칩니다.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 9)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우리를 기다려 주시는데 우리는 너무 기다리지 못하고 조급해 하였습니다. 참지 못하고 쉽게 성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인자로이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께 온갖 불평불만을 쏟아내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복된 희망은 기다림에서 출발합니다.

희망은 기다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의 시작은 기다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에 원조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날 때 하느님께서는 구세주를 약속하셨습니다. 때문에 구약의 하느님 백성은 메시아, 구세주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구세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고, 그분은 지극한 사랑으로 인간을 품어 안으시고 용서와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당신의 공생활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실 것을,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신약의 백성들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신앙은 시작부터 마침까지 기다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기다릴 줄 알 때 구원이 오는 것입니다.

사실 많이 참지 못하고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던 바오로 사도는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 유명한 ‘사랑의 찬가’를 노래할 때 사랑의 제일 첫 번째 덕목을,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 4)로 꼽았습니다.

사도직분의 은사나, 예언의 은사, 가르치는 은사, 기적과 병을 고치는 은사, 도와주고 지도하고 신령한 언어를 말하는 그 모든 하느님의 은사 중에 가장 큰 은사는 사랑의 은사라는 것을 힘주어 말한 바오로 사도는 그 위대한 사랑의 은사의 첫 번째를 참고 기다리는 것으로 꼽은 것입니다.

사랑의 시작은 결국 기다림입니다. 그 인내와 기다림이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이끄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오로는 또다시 이렇게 강조합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 24~25)

보이지 않는 희미함,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믿음, 희망, 신앙, 때론 확신이 들것 같다가도 이내 까마득한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하느님을 향한 신뢰, 그러나 나를 위하여 끝없이 참고 기다려 주시는 하느님의 기다림에 다시 일어나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지금은 비록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어도 마지막에는 분명 그분을 뵈올 수 있다는 희망에 우리는 오늘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먼저 사랑을 보여주셨고 날 위해 기다려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희망을 안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