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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자신 낮추고 섬기는 자세 가져라/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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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6) 자신 낮추고 섬기는 자세 가져라/ 배광하 신부

연중 제29주일(마르 10,35-45) : 의로운 나의 종
발행일 : 2009-10-18 [제2668호, 10면]

섬기는 사람

평생을 집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며 사셨던 프랑스인들이 가장 존경하였던 ‘아베 피에르’신부(1912~2007)는 당신의 황혼기에 생을 정리하며 아름다운 글을 썼습니다. 「피에르 신부의 유언」 이라는 책에서 그는 당신의 긴 생애에서 만났던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중 ‘다니엘 지강’이란 분에 대하여 이런 감동적인 글을 쓰고 있습니다.

“다니엘 지강이라는 사람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곳 에스트빌에서 죽었다. 농부의 아들이었던 그는 사제가 되기를 소망했지만 폐결핵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그는 이 집을 막 개방했을 때 찾아왔는데, 당시에는 편의시설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불평 한마디 없이 온갖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며 10년 이상을 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하느님 맙소사!’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을 때만 화를 냈다. 선함이 충만한 분노였다. 간호사가 그의 방에 들어가 그가 죽은 걸 알았을 때 탁자 위에는 공책 하나가 펼쳐져 있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게 아니라 섬기러 오셨다…’그는 내가 만난 성자들 중 하나였다. 낮은 곳에서 자신의 방식으로 하느님을 섬긴 진짜 성자 말이다.”

세상 모든 영웅과 위대한 성인들 역시 자신의 능력만으로 그 자리에 있게된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실로 무수히 많은 이름모를 협력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인 성녀들 또한 가장 낮은 자세로 주님을 섬기고 사람을 사랑하였지만 그들 곁에는 언제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들의 숨은 희생이 있었기에 그분들이 있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씨는 성인들이 뿌렸지만 거두는 일은 더욱 낮은 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주님의 참된 종들이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도 참된 주님의 종의 자세를 이렇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인류 역사상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섬김을 받기보다는 늘 섬기는 자세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의 종

<바보 목록> 이라는 글에는 진짜 바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습니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 남의 욕을 많이 하는 사람, 부끄러움을 못 느끼는 사람, 자기의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 사고의 깊이보다 목소리가 더 큰 사람, 얕은 이치를 깨닫고 성자가 된 듯이 날뛰는 사람, 늘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 조금 쉬우면 시시하다 하고, 조금 어려우면 포기하는 사람, 남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신이 깨달은 것처럼 말하는 사람, 자신의 지혜가 짧은 줄도 모르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설교하는 사람, 조그만 일도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큰것만을 생각하는 사람, 자신의 주장은 열심히 피력하고 남이 이야기 할땐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 자기보다 조금 못나 보이면 경멸하고, 조금 나아 보이면 주눅드는 사람, 절대로, 죽어도, 하늘이 무너져도, 반드시 등 극단적인 단어를 많이 쓰는 사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세상은 분명 똑똑한 사람들이 적어 살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똑똑한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주인이 없어서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희생하며 바보처럼 살고자 하는 종이 없어서 고달픈 것입니다. 계산적인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아비규환의 고통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마르10,43-44)

‘케롤 위머’는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자세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죄인이었음을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을 선택했노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우심이 필요했노라고,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이 힘주시기를 기도하노라고.”

세상은 남을 섬기는 종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 겸손되이 희생하는 의로운 하느님의 종이 많아야 세상은 진정 더욱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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