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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기쁨으로 오시는 주님 깨어 영접/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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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2) 기쁨으로 오시는 주님 깨어 영접/배광하 신부

대림 제1주일(루카 21,25-28,34-36) : 속량의 날을 준비하며
발행일 : 2009-11-29 [제2674호, 10면]

기다림의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기다림으로 깨어 준비해야 하는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림’은 ‘기다림’입니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모든 것이 기다림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여도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 낳기를 기다리고, 어서 자라 주기를 기다리며, 학교 가기를, 졸업하기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취업하기를 기다리고, 시집 장가가기를 기다립니다. 식당에서는 밥 나오기를 기다리고, 버스를 타기 위해서도 기다립니다. 우리네 인생살이에서의 기다림도 있지만, 우리가 믿고 있는 하느님 역시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돌아서기를 하염없이 기다리시고 또 기다려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성경의 모든 예언서의 주제와 예언자들이 외쳤던 외침은 한결같이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시는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문에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마음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에제 18,23)

그런가 하면 우리 그리스도교의 시작과 마침도 기다림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시작은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원조 아담과 하와의 범죄와 추방에서부터라고 봅니다. 그들이 쫓겨날 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구세주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창세 3,15 참조). 그로부터 구약의 하느님 백성들은 메시아께서 오시기를 무려 4천 년 가까이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약속대로 메시아께서 이 죄 많은 세상에 죄인들을 위하여 오셨고 그들과 33년을 함께 사셨습니다. 당신의 구원사업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시 오실 재림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때문에 신약의 하느님 백성들은 예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2천 년을 넘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은 공심판의 날이며, 세상 종말의 날입니다. 사이비 종교에서는 종말을 선전하며 교세와 착한 신도들을 공포로 몰아넣어 금품을 갈취하는 악용으로 이용하지만, 우리 그리스도교의 참된 종말은 예수님 약속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그날이 어서 오도록 2천 년을 노래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삶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느님,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교, 그 모두가 기다림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때문에 진정 참된 기다림과 기쁨으로 그날을 깨어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깨어 기다림

오늘 화답송에서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선하시고 바르시니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신다. 가련한 이들이 올바른 길을 걷게 하시고 가련한 이들에게 당신 길을 가르치신다.”(시편 25,8-9)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을 다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우왕좌왕할 인생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이제는 한 눈 팔 것이 아니라, 정해주고 알려주신 그 길을 따라 충실히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처럼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이 사랑하는 어머님을 여의고 가슴 아파하며 어머님의 무덤을 찾고 돌보다가 이민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민을 떠나기 전 아들은 어머님 무덤 가까이 사는 동네 사람에게 큰 돈을 주며 어머님의 무덤을 잘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였고 매년 돈을 보내 주었다고 합니다. 수년간 고국을 찾지 못했던 아들은 문득 어머니가 사무치도록 그리워 갑자기 귀국했고, 어머님의 무덤부터 달려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덤을 돌보는 사람은 아들이 영영 오지 않을 줄 알고 몇 년을 돌보지 않아 무덤은 이미 잡초 무성한 풀밭으로 버려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님의 무덤이 폐허가 된 것을 본 아들은 오열하였고 무덤 관리인을 경찰에 고발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 같은 무덤 관리인이 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십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6)

대림, 기쁨과 설렘으로 깨어 기다리는 이 시기에 우리는 버마의 민주운동가인 ‘아웅산 수지’ 여사의 저명한 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에 인용 되면서 널리 알려진 부패에 이르는 네 가지 길에 관한 초기 불교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합니다.

“첫째, 사람들은 욕망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둘째, 사람들은 싫어함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셋째, 사람들은 망상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넷째,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릇된 길을 가게 된다.”

우리는 진정 욕망과 미움, 망상과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기쁨으로 오시는 주님을 깨어 영접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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