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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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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배광하 신부

대림 제3주일(루카 3,10-18) :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발행일 : 2009-12-13 [제2676호, 10면]

기뻐하십시오

옛날 금슬이 좋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두 분은 적적할 때면 아이들처럼 술래잡기를 하셨습니다. 어느날 할머니가 술래가 되고 할아버지는 숨으셨는데, 할머니가 한참을 찾다가 항아리 속에 숨어있는 할아버지를 찾아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 숨었소? 영감”“그리 숨었소?”“크리숨었스”“크리스마스”크리스마스를 부르게된 어원이라고 합니다??? 오늘 사도 성 바오로는 성탄의 기쁨을 앞둔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분부합니다.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립 4,4)

우리는 복음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말 그대로 기쁜 소식입니다. 기쁜 소식을 들은 우리는 기쁨을 살아야 합니다. 기쁨을 살고 있는 사람들만이 기쁨을 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사의 고달픈 일들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떤 이들은 긍정적으로 잘 받아들여 기쁨으로 승화시키고, 어떤 이들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스스로에게도 상처를 주고 남들에게도 상처를 주어 절망을 살게끔 만듭니다. 기왕에 받아들여야 한다면 진정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라는 말이 있듯 웃는 이들을 미워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 찡그린 얼굴로 불평불만하며 살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 우리네 삶에서 짜증이 나고 분이 치밀어 오르는 경우는,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옵니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의 뜻도 사람과 사람 사이입니다. 우리는 어떻든 모든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였던‘최재천’교수는 당신의 책<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서문에 이 같은 글을 썼습니다.

“어떨 때는 정말 우리가 동물만도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라는 위선의 탈을 벗고 지극히 동물적으로 살아도 이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울화가 치밀 때가 언뜻 언뜻 있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소박한 신념이 하나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믿음입니다.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미워하고 시기한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돌에 맞아 싼 사람도 왜 그런 일을 저질러야만 했는지를 알고 나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들 심성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는 분명 사랑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우리 모두에게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 보이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즐거워하십시오

어떤 할머니께서 장날 장에 가셨는데, 웬 젊은 남자가 할머니 뒤를 따라오며, “같이 가 처녀!”라고 외치더랍니다. 할머니는 민망해서, “저 젊은 놈이 이 늙은이에게 웬 처녀…”하며 종종걸음을 걸으시는데, 그 젊은이는 계속 따라오며 “같이가 처녀!”를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부끄러워 빨리 걷던 할머니가 귀에 걸은 보청기를 제대로 끼었더니 그 젊은이의 목소리가 잘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갈치가 천 원!”이라고요…??? 이 같은 멋진 글이 있습니다.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희로애락의 인생이지만 고단한 삶 한가운데에서도 끝없이 우리네 삶이 기쁨인 까닭은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분명 기쁨을 우리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를 오늘 스바니야 예언자는 이렇듯 분명히 밝힙니다.

“주 너의 하느님, 승리의 용사께서 네 한가운데에 계시다. 그분께서 너를 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신다.”(스바 3,17)

우리는 분명 아기 예수님, 우리의 승리자이신 주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워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 오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인생살이에서 겪게 될 온갖 시련과 고통을 아시기에 또다시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승리의 임금이신 주님께서 또다시 우리에게 오십니다. 슬프고 외롭고 맥이 다 빠져버린, 비참하고 억눌린 가련한 우리에게 또다시 힘과 용기와 희망과 기쁨을 주시기 위하여 오십니다. 그때문에 우리는 우울할 수가 없습니다.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슬퍼하며 좌절한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진정 기쁨을 살아야 하고 그 기쁨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세리와 군사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묻습니다.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루카3,14)

오늘 우리 또한 이 같은 질문에 분명히 대답해야 합니다. 진정 기쁨의 성탄을 목전에 둔 우리는 기뻐하며 즐거워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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