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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모든 희망은 믿음에서 시작/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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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모든 희망은 믿음에서 시작/ 배광하 신부

대림 제4주일(루카 1,39-45) :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발행일 : 2009-12-20 [제2677호, 10면]

작고 보잘 것 없는 곳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저는 주간 잡지에 실린 방글라데시의 어린 소년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루스탐’나이는 10살, 부모에게 응석이나 부리고 학교에 가야할 이 어린이는 방글라데시 디카에 있는 알루미늄 공장의 희미한 전등 밑에서 고막이 찢겨나갈 듯한 소음 속에 일한다고 합니다. 루스탐이 12시간을 꼬박 일하고 받는 일당은 1.7달러라고 합니다. 우리 돈 겨우 2천 원에 위험한 기계와 쇳가루 날리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루스탐이 일하는 이곳 알루미늄 공장에는 루스탐과 같은 어린이가 25명이나 더 있다고 합니다. 소년은 아직도 자신의 쾡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고대하며 기다리는 아기 예수님은 바로 이곳에, 루스탐과 같은 아이들이 일하는 곳에 오실 것입니다. 그분은 결코 크고 화려한 곳에 오시지 않습니다. 그때문에 구원의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곳에, 보잘 것 없는 슬픈 이들의 벗이 되어 주시기 위하여 주님은 오십니다. 이때문에 오늘 미카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세상의 가장 작은 민족, 가장 학대받는 비참한 땅에서, 그것도 가장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방 한 칸 없이 짐승들이 기거하는 외양간 구유에서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께서는 진정 작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의 벗으로 오십니다. 세상의 참된 희망이자 구원의 등불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작고 보잘 것 없는, 고통과 아픔 중에 신음하는 곳으로 달려가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사 때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이라고 기도 하지만 라틴어 경본의 원 뜻은 “없애시는 분”이라기보다는 “짊어지시는 분”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합니다. 진정 구원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악과 죄를 짊어지려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 신앙인들 역시 세상에 만연된 죄와 모든 불평등, 소외와 고통의 짐을 같이 짊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작은이들의 벗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인 것입니다. 서로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질 때 비로소 우리는 희망의 빛이신 아기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행복합니다

오늘 엘리사벳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마리아에게 이 같은 인사를 합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45)

진정 모든 희망은 믿음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믿음이 사라질 때, 희망 역시 사라지는 것입니다. 도대체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서부터 신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도대체 말씀 한마디로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는 것으로부터 신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불확실한 사실, 비과학적인 모든 것들에 믿음을 가지고 뛰어드는 모험이며, 자신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투신하는 용기인 것입니다. 오늘 성모님께서도 그 같은 놀라운 믿음을 보이셨기에 모든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신 분이 되신 것입니다.

아주 작은 세상적인 지식을 가지고 그것이 전부인양 우쭐대며 교만을 떠는 자들에게는 기적이 보일 까닭이 없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기적을 믿는 소박한 이들에게 당신을 보이십니다. 진정 자신은 죄인이고 작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낮추는 참되고 겸손한 믿음의 소유자에게 당신을 보이십니다. 이때문에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오시는 예수님의 삶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해 알리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

성모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이 같은 믿음의 대답이 구원을 가능케 하였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이 같은 겸손이 승리하였고, 이 같은 믿음이 희망의 불씨를 지폈던 것입니다. 진정 많은 이들이 힘겨운 고통중에 살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이겨내며 기쁨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의 아기 예수님을 만나 뵈온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동방박사들처럼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러 길을 떠나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릅니다. 그 길은 겸손과 기쁨의 길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만나 뵙고 끝으로 행복하였노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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