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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유럽 | 1 | 불가리아, 벨기에, 이스라엘 | 불가리아 |
2 | 유럽 | 1 | 서독, 스웨덴, 키프러스 | 서독 |
3 | 유럽 | 1 | 프랑스, 노르웨이, 유고, 룩셈부르크 | 프랑스 |
4 | 유럽 | 1 | 포르투갈, 체코, 루마니아, 터키 | 포르투갈 |
5 | 유럽 | 1 | 스위스, 북아일랜드, 네덜란드, 알바니아 | 스위스 |
6 | 유럽 | 1 | 헝가리, 동독, 오스트리아 | 헝가리 |
7 | 유럽 | 1 | 소련, 웨일즈, 그리스, 덴마크 | 소련 |
8 | 유럽 | 1 |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폴란드, 핀란드 | 이탈리아 |
9 | 유럽 | 1 | 스페인, 아일랜드 | 스페인 |
10 | 남미 | 1 | 우루과이, 페루, 베네수엘라 | 우루과이 |
11 | 남미 | 1 | 칠레, 에콰도르, 콜롬비아 | 칠레 |
12 | 남미 | 1 |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 아르헨티나 |
13 | 북중미 | 1 | 최종예선: 멕시코,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 멕시코 |
14 | 아시아•아프리카 | 1 | 최종 플레이오프: 북한, 호주 아프리카 팀들 기권 |
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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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잉글랜드는 축구 종주국답게 백만 관중을 가볍게 돌파(총 163만명 동원)하는 한편, 세계 29개국으로 위성 TV 중계를 실시하는 등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스케일을 과시하며 1966년 대회를 크게 흥행시켰다. |
02 |
전 대회 우승국 브라질의 조별리그 탈락은 1966년 대회에서 일어난 최대 이변이자 사건이었다. 유럽 팀들의 거친 파울에 고전을 면치 못한 브라질 선수들은 “역대 최악의 월드컵” 이라며 1966년 대회 자체를 비아냥거렸고, 특히 부상으로 쓰러진 펠레는 “유럽 선수들은 풋볼이 아닌 풋복싱을 하길 원한다. 두 번 다시 월드컵에 참가하는 일은 없을 것” 이라며 사실상 월드컵 은퇴를 선언했다. |
03 |
참고로 전 대회 우승국의 조별리그 탈락은 월드컵 역사상 세 번밖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1966년 대회의 브라질과 함께 50년 대회의 이탈리아(1938년 챔피언), 2002년 대회의 프랑스(1998년 챔피언)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
04 |
지난 1962년 대회부터 시작된 유럽과 남미 간의 감정 다툼도 변함없이 격렬한 양상을 나타냈다. 잉글랜드 선수들이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에서 거친 반칙에 고전한 것을 시작으로, 펠레와 브라질 동료들은 거침없는 유럽 선수들의 태클에 부상으로 쓰러졌으며, 서독 선수들도 우루과이와의 8강전에서 급소를 걷어차이는 등의 몰상식한 반칙을 당했다. |
05 |
이러한 양 대륙 간의 감정 다툼은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8강전에 이르러 절정으로 달했다. 사건의 발단은 서독 출신의 크라이틀라인 주심이 아르헨티나 주장 라틴을 갑작스레 퇴장시킨 것에서부터 비롯됐다. 스페인어를 몰랐던 크라이틀라인 주심은 라틴의 항의를 자신에 대한 욕설로 간주했지만, 영문조차 모르고 퇴장 명령을 받은 라틴은 경기장을 떠나지 않은 채 주심의 판정에 불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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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이 퇴장을 인정하지 않자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고, 경기 분위기는 점차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잉글랜드는 가까스로 1-0 승리를 거뒀지만, 패배에 분노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라커룸을 발로 걷어차는 등 경기가 끝난 뒤에도 거칠게 난동을 부렸다. 이에 램지 감독은 아르헨티나 선수들을 ‘짐승들(Animals)’이라 비난하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했다. |
07 |
이 ‘애니멀 발언’은 추후 아르헨티나에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잉글랜드가 심판을 사들여 승리를 도둑질해갔다” 며 강도 높은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오늘날에 이르러 1966년 대회 8강전에서 일어난 라틴 퇴장 사건은 잉글랜드-아르헨티나 라이벌 역사의 출발점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08 |
피파는 두 대회 연속으로 거친 반칙이 난무함에 따라 그 대비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그 결과 피파는 옐로우카드-레드카드 시스템을 마련, 1970년 대회부터 경고 1회를 받은 선수가 2회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는 규정을 처음으로 적용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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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피파는 선수교체 제도에 관해서도 재검토를 실시하여 1970년 대회부터 적용시키기로 결정을 내렸다. 이 규정이 도입된 결정적 계기는 1966년 대회 최대 이변으로 손꼽히는 북한-이탈리아 경기 때문이었다. 이 경기에서 이탈리아는 미드필더 불가렐리가 부상으로 실려나간 뒤 10명으로 싸워야 했고, 결국에는 0-1 패배까지 당했다. 피파는 이와 같은 사례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1970년 대회부터 선수교체 제도를 도입하게 된다. |
1974년 제10회 서독 월드컵 (0) | 2011.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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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 (0) | 2011.05.01 |
1962년 제7회 칠레 월드컵 (0) | 2011.05.01 |
1958년 제6회 스웨덴 월드컵 (0) | 2011.05.01 |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 (0) | 2011.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