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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유럽 | 1 | 스위스, 스웨덴, 벨기에 | 스위스 |
2 | 유럽 | 1 | 불가리아, 프랑스, 핀란드 | 불가리아 |
3 | 유럽 | 1 | 서독, 북아일랜드, 그리스 | 서독 |
4 | 유럽 | 1 | 헝가리, 네덜란드, 동독 | 헝가리 |
5 | 유럽 | 1 | 소련, 터키, 노르웨이 | 소련 |
6 | 유럽 | 1 | 잉글랜드, 포르투갈, 룩셈부르크 | 잉글랜드 |
7 | 유럽 | 1 | 이스라엘, 키프러스, 이탈리아, 루마니아 | 이탈리아 |
8 | 유럽 | 1 | 체코,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 체코 |
9 | 유럽 | 0.5 | 스페인, 웨일즈 플레이오프: 모로코 0-1 스페인, 스페인 3-2 모로코. |
스페인 |
10 | 유럽 | 0.5 | 유고, 폴란드 플레이오프: 유고 5-1 대한민국, 대한민국 1-3 유고 | 유고 |
11 | 남미 | 1 |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 아르헨티나 |
12 | 남미 | 1 | 우루과이, 볼리비아 | 우루과이 |
13 | 남미 | 1 | 콜롬비아, 페루 | 콜롬비아 |
14 | 북중미 | 0.5 | 최종예선: 멕시코, 코스타리카, 네덜란드령 앤틸리스 플레이오프: 멕시코 1-0 파라과이, 파라과이 0-0 멕시코 |
멕시코 |
15 | 아프리카 | 0.5 | 최종예선: 모로코, 튀니지, 가나, 나이지리아 플레이오프: 모로코 0-1 스페인, 스페인 3-2 모로코. |
- |
16 | 아시아 | 0.5 | 최종예선: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기권) 플레이오프: 유고 5-1 대한민국, 대한민국 1-3 유고 |
멕시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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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1962년 대회 개막을 앞두고 칠레에서 일어난 지진은 ‘20세기 최악의 대지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 지진은 1960년 5월에 칠레 전 국토에 걸쳐 발생했는데, 그 진도는 무려 9.5에 달했고 인명피해 또한 5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정도로 막대했다. |
02 |
칠레는 이 대지진으로 인해 1962년 대회 준비과정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가의 존폐여부 자체를 의심받았다. 그로 인해 피파는 칠레의 1962년 대회 개최를 재검토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칠레 축구 협회장 디트보른은 “우리는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월드컵 하나뿐인데 그것마저 빼앗아가려 하는가” 라는 눈물겨운 외침으로 피파 측의 마음을 돌렸다. |
03 |
칠레는 1962년 대회 개최권을 지켜낸 이후 시설 복구, 경기장 신축 등의 준비 작업을 범국가적으로 진행시켰다. 이러한 대규모 작업은 칠레 축구협회장 디트보른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고, 칠레는 가까스로 월드컵 준비를 끝마칠 수 있었다. |
04 |
매우 안타깝게도, 디트보른 협회장은 월드컵 개막을 한 달 앞둔 1962년 4월 28일에 세상을 떠났다. 칠레는 디트보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아리카 경기장의 이름을 ‘카를로스 디트보른 스타디움’으로 공식 변경했다. |
05 |
1962년 대회는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던 지난 1958년 대회와 다르게 유럽과 남미의 신경전이 극에 달했던 대회로 기록되어 있다. 특히 개최국 칠레와 이탈리아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양 팀 선수들의 거친 반칙과 주먹다짐이 90분 내내 난무했을 정도였다. ‘산티아고의 난투극’으로 불리는 이 맞대결은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경기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
06 |
전설의 산티아고 난투극은 이탈리아의 한 기자가 쓴 공격적인 기사로부터 출발한다. 현지에 도착한 이탈리아 기자는 “칠레와 같은 나라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은 미친 짓”이란 표현을 서슴지 않았고, 이 소식을 접한 칠레 측이 분노를 삭이지 못해 이탈리아 기자들을 모두 추방하려 한 것이다. 그 결과 양 국 선수들은 감정이 극히 악화된 채로 경기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
07 |
경기 시작 전부터 난투극을 예상한 이탈리아의 마짜 감독은 유약한 스타일의 시보리와 리베라를 선발 명단에서 과감히 제외시켜버렸다. 마짜 감독의 예상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양 팀 선수들은 경기 시작부터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거친 파울을 주고받았고, 이탈리아의 페리니는 전반 7분 만에 퇴장을 당한 뒤 경기장을 떠나지 않고 칠레 선수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좋지 못한 모습을 연출했다. |
08 |
칠레에 패한 이탈리아는 결국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시보리와 마스키오를 비롯한 이민계 선수들을 4명이나 귀화시키는 한편, 의사, 유명 요리사, 마사지 전문사, 심리학자 등의 특별 스탭까지 구성하여 1962년 대회를 준비한 것 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성적표가 아닐 수 없었다. 이탈리아는 탈락 이후에도 개최국 칠레를 강도 높게 비난하며 서로간의 감정을 악화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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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시작된 남미와 유럽간의 전쟁 분위기는 1962년 대회 내내 지속됐으며, 선수들의 계속되는 거친 반칙은 대회의 질적 수준을 크게 떨어뜨리고 말았다. 대회 전체 득점 역시 전 대회에 비해 37골이나 줄어들었는데, 이에 유럽 언론들은 1962년 대회를 “몰상식한 반칙이 난무하는 역대 최악의 월드컵”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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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서도 개최국 칠레는 4강 신화를 달성하는 성과를 남겼다. 특히 칠레 홈 관중들의 뜨거운 응원 열기는 아직까지 인구에 회자되고 있을 정도다.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진 칠레 국민들의 응원구호 “칠~칠~레~레~칠레~칠레~비바 칠레!” 또한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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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역대 최고의 골키퍼로 추앙받는 레프 야신은 이 대회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자존심을 구길 대로 구겼다. 콜롬비아와의 조별리그 경기에서는 월드컵 역사상 유일무이한 ‘올림픽 골’까지 내주는 수모를 당했는데, 야신을 상대로 역사적인 골을 성공시킨 주인공은 콜롬비아 미드필더 마르코스 콜이었다. |
09 |
‘올림픽 골’이란 코너킥으로 직접 득점을 뽑아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1924년 올림픽 당시 아르헨티나의 세자레오 온사리가 우루과이를 상대로 성공시킨 코너킥 득점이 ‘올림픽 골’의 기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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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제8회 잉글랜드 월드컵 (0) | 2011.05.01 |
1958년 제6회 스웨덴 월드컵 (0) | 2011.05.01 |
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 (0) | 2011.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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