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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

古典의 향기

by 巡禮者 2012. 5. 1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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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

  

1. 르네상스와 인간의 재발견

 

- 다시 돌아온 인간의 시대

 

'부활' '재탄생'의 뜻을 가진 르네상스는 고전문화의 부흥을 의미한다. 십자군 전쟁이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와 작가들의 작품이 이탈리아로 유입면서 기독교의 교리에 따라 꾸며진 이전의 번역판에서 벗어나 원어인 그리스어로 철학과 문학을 접하는 계기가 되었고, 학문의 관심은 신에게서 인간으로 향하게 된다.

 

- 신에서 인간으로 ;르네상스 운동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문예부흥운동은 종교적 색채가 지배적이었던 중세의 예술에서 벗어나 세계와 인간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통해 인간과 자연을 중심으로 예술활동을 전개하면서 시작된다. 

 

 

페트라르카 Francesco Petrarac (1304~1374) 시인이었던 페트라르카는

14세기에 인간의 기쁨가 슬픔 같은 주제로 글을 썼고, 성모 마리아를 통해서 표현되는 중세의 상징적인 여성관에서 벗어나 여성을 인격을 갖춘 이성적 존재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보카치오 Giovanni Boccaccio (1313~1375) 이탈리아 소설가. 그는 여성이 가진 관능적인 아름다움과 성적 욕구를 묘사함으로써 여성의 인간성을 더욱 부각시키는가 하면 운명의 주인을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미란돌라 Picodella Mirandola (1463~1494)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철학자.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신이 부여한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여

인간은 스스로 운명을 결정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책으로 인해 그는 교황청으로부터 이단으로 몰리기도 했다.

 

이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신과 같은 더 큰 존재에 의존하기 않고 스스로의 길을 열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상적 운동은 15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로부터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 토머스 모어와 같이 정치 경제적 개혁을 열망하는 사상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 새로운 철학의 경향들

 

-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1553~1592)의 회의주의

 

 

 

몽테뉴 Michel de Montaigne (1553~1592) 프랑스 남부 지방에서 부유한 상인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증조부때 몽테뉴 성을 구입하여 그의 가문은 귀족의 지위를 얻었고, 그의 아버지는 포도주 산지로 유명한 보르도의 시장을 지내기도 했다. 몽테뉴는 보르도 고등법원의 참사관이 되어 궁정에도 출입하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되는가 하면 보르도 시장에도 선출되었다.

 

그러나 재임기간에 종교전쟁과 (30년전쟁) 페스트의 창궐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기도 했다. 몽테뉴의 『수상록』은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으로 여러차례 수정과 가필을 한 것이고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고 다듬어 쓴 것이라고 한다.

 

몽테뉴는 회의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거의 『수상록』은 고대의 회의주의자인 섹스투스 엠페리쿠스와 피론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하지만 그의 회의주의는 진리의 인식을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극단적인 회의주의는 아니었다.

그는 어떤 교의나 학설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의문을 던진다. 그러한 의심의 방식이야말로 회의주의가 가진 힘이며 어느 한 관념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해서 사물을 탐구할 수 있게 해주는 지식인의 자세라는 것이다. 몽테뉴에게 있어 '회의'란 한 가지 관념이나 학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탐구 정신을 갖게 하는 가장 훌륭한 지석의 수단인 것이다.

 

- 파스칼 Blaise Pascal(1623~1662) : 마음과 이성

 

 

 

파스칼 Blaise Pascal(1623~1662)

 

 

프랑스 중부 지방의 클레르몽페랑이라는 도시에서 세무법원 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함께 파리로 왔으며 어릴적부터 천재성을 발휘해 16세가 되던해 원뿔곡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20대에 들어서 신의 예정설과 신의 은총을 강조하는 얀센주의 신앙운동을 접하여 종교에 첫 발을 디디게 되는가 하면, 한때 사교계에 발을 들여 여러 유력자들과 교분을 맺기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교계를 혐오하게 되었고 1654년 결정적인 종교적 체험을 통하여 종교로 완전히 매진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그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변호론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그는 결코 광신론에 빠지지 않았고 여전히 수학자였고 과학자였다. 과학과 이성은 그에게 여전히 훌륭한 것이었다. 그러나 파스칼이 이성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파스칼이 사유에 있어 '마음'의 역할을 강조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성이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마음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말은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직관적인 통찰력을 가리킨다고 보아야 한다. 이성이 모르는 것을 마음을 통해 먼저 아는 경우가 있다. 파스칼에게 마음은 진리로 열려 있는 것이었다. 과학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사물은 우리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마련이다. 같은 것이 어떤 이에게는 참이고 어떤 이이게는 거짓이 될 수 있다. 결국 진리는 마음의 작용을 통하여, 즉 비이성적이고 직접적이며 직관적인 통찰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는 거이다.

 

파스칼이 종교를 옹호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그는 신의 존재를 믿는 것을 '도박사의 계산'에 비유한다. 도박사는 항상 불확실한 변수를 두고 모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신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신을 믿는 도박이 결코 손해보는 도박은 아니라고 말한다. 먼저, 만약 신이 존재하고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우리는 큰 보상을 받게 될 것이고, 둘째, 만일 신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보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셋째,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우리는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이역시 우리는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게 된다. 이럴 경우 도박사는 신을 믿는 쪽에 걸지 않을  수 없다. 손해나는 장사가 아님에도 우리가 애써 신의 존재를 부정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계산이 사람을 신앙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단 신앙으로 인도된 사람은 제단에 무릎 꿇고 그 형식과 전통에 충실할 때 비로소 신앙심이 깊어지게 된다. 신앙으로 인도된 후에는 이성의 계산보다도 종교적 관습과 절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3. 정치이론의 대두 ; 홉스와 사회 계약

 

- 공포로부터 출발하는 철학자

 

Thomas Hobbes (1588~1679)

 

영국 월트셔 지방출신으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스페인 무적함대가 영국으로 접근해올 무렵 달을 채우지 못한 채 태어나  자신의 출생을 "어머니는 나 자신과 공포라는 쌍둥이를 낳았다"는 말로 표현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지만 교약을 갖추지 못한 사나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과 자주 싸움을 했고 폭력을 쓰다가 목사직에서 파면되고 나중에 가족을 버리고 집을 나가 버린다. 홉스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것은 아버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본다.

 

홉스는 15세에 옥스퍼드에서 공부하며 고전문학에 매료된다. 1608년 캐번디시 가문의 가정교사로 70년이란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데카르트, 갈릴레이와 같은 당대의 대표적인 사상가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국제적인 경험으로 인해 대륙철학을 연구할 수 있었고 베이컨의 경험주의적 철학도 저발 수 있었으며  그것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유물론적 철학을 수립하게 된다.

 

- 자연과학의 도입 ; 물체의 철학

 

홉스는 정치철학을 물리학의 변형으로 간주한다. 그는 철저히 유물론적 입장을 견지하며 인간 본성에 대한 유물론적 견해를 통해 정치 철학의 체계화가 가능하다고 여겼다. 그가 살았던 시기는 크롬웰 시대의 혼란기였고 정치적 불일치가 만연해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고 정치적 의견의 일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홉스는 정치이론을 논리적인 정합성을 가지고 체계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자연상태 ;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자연상태에서는) 예술도 없고 문학도 없으며 사교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행한 일은, 공포가 떠날 사이가 없으며 잔인한 죽음의 위협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인생은 외롭고 가난하며 더럽고 잔인한데 그나마 짧다는 사이다. " - 『리바이어던』

 

 

 

 

홉스의 저작 『리바이어던』리바이어던은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거대한 영생 동물의 이름이었지만 홉스가 자신의 책 제목으로 붙였다.  교회 권력으르부터 해방된 국가를 표현한다.  홉스는 인간을 끝없는 욕망을 가진 존재라고 규정한다. 이러한 영속적인 욕망은 '자기를 보존하려는 욕망'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렇게 욕망의 지배를 받는 것이 자연상태의 인간이다. 인간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  이는 자연법의 이성과 일치하는 본능적인 욕망이다. 결국 자기를 보존하는 것은 인간이 갖는 최초의 권리인 것이다.

 

홉스는 국가나 시민사회가 존재하기 이전인 자연상태를  가정한다. 자연상태 안에서 인간은 평등하고 자신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홉스가 말하는 평등은 오늘날과 같은 권리가 아닌 객관적 상태에서의 평등이다.  여기서의 평등은 누구나 자신이 필요한 것을 취할 수 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웃을 해칠수도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누구나 제약없이 무슨 일이건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연상태는 무정부 상태와 유사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이는 어떠한 가치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이고, 모든 선과 정의는 자신의 기준에 따라 결정된다.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원칙은 '자기 보존의 권리'라는 원칙뿐이다. 따라서 모든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모든 힘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되며 자연상태의 인간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에 있게 된다. 이는 공포와 죽음의 위협이 상존하는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자연상태는 무정부 상태로 치닫게 된다.

 

- 국가의 계약 ; 리바이어던의 탄생

 

이러한 전쟁상태는 자연권인 '자기보존의 권리'에 위배되는 상태이다. 인간은 자연상태에 의해 자신의 안전을 위협받는데, 이런 상황에서 ㅣ인간은 자신의 생존에 대한 관심 때문에 어떤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자연법이다. 자연법은 생명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 이성이 내린 결론이고 올바른 이성이 바견한 원칙이나 규율이라고 할 수 있다.

 

제1의 자연법은 모든 인간이 평화를 추구하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1의 자연법을 홉스는 '근본적 자연법'이라고 부른다. 제2의 자연법은 평화와 자기 벙어를 위해 필요하다면 그리고 타인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한 자진해서 모든 것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다. 자유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권리의 포기와 평화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그것은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권력에게 그러한 권리, 즉 적대의 권리를 양도할 때만 가능하다. 자연상태라는 무정부 상태를 피하기 위해, 자연법에 따라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들은 자신의 권리나 자유의 일부를 포기하고 사회 계약을 맺게 된다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이렇게 탄생했다.

 

홉스이 사회계약은 개인의 자연적 권리와 자유를 권력에 양도함으로써 강력한 공화국을 만들어 내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홉스는 그리하여 국가와 같은 인위적인 인간, 즉 영생의 존재인 리바이어던이 탄생하게 된다고 말한다.

 

홉스는 자연상태와 같은 무정부 상태를 극복할 수 잇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 시민 집단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한 통합을 홉스는 다수의 다양한 의지를 단일한 의지로 변환하기 위해 주권자를 설정하고 주권자의 단일의지와 판단이 모든 시민의 의지와 판단이라고 합의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사람들이 평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지배당하는 것을 선택한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계약을 '능동적 피지배의 계약'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 사회계약 ; 모든 의지의 총화인 리바이어던

 

이러한 상태에서 주권자가 법을 제정하는 것은 모든 시민이 법을 제정하는 것과 동일하기 때문에 법은 불공정할 수 없다. 법이 불공정하다고 말하는 것은 시민들의 합의를 불공정하단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바로 여기서 제3의 자연법이 도출된다. 만인의 합의로 성립된 계약은 반드시 이행하라는 것이다. 홉스에게 정의란 바로 그러한 법을 지키는 것이다. 홉스에게는 법이 우선하고 정의가 그 뒤를 따르는 것이다.

 

결국 정의는 법을 판단하는 기준이 아니다. 만약 법질서가 무너진다면 그것은 자연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상태로의 회귀는 공포로의 회귀를 의미할 뿐이다. 결국 홉스는 평화라는 궁극의 목적을 지키는 것을 가장 우선시하게 된다.

홉스에 따르면 주권자가 옳지 않아도 시민은 주권자에게 저항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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