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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적 유물을 통해 본 하나님의 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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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巡禮者 2012. 4. 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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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代史的 遺物」을 通해 본 θ의 攝理

基督敎(Catolic과 改新敎) 遺跡을 巡禮하며


강 좌 : ① (合同)대구노회 제8회 장로 연합 세미나    

강 의 : 朴  錫  泓 (比較宗敎學/敎會史) 

 

② 국제 선교 신학(신학연구원장 이 옥)                  

한국 교회사(신학대) 강의 / 장로

 

③ 한국 크리스찬 문학가협회(김지향)                    

 한국 문화사, 한국사 강의 / 교수 

                                                                                                

장 소 :  군위 제2석굴암 온천 관광호텔                

일 시 : 2002년 10월 31일(목)                        
 

□ 先史時代 ; 岩刻畵(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48호)

   ․ 위치 : 영주시 가흥동 마애삼존불(한절마을) 인근에 소재.(사진 I-1)

   ․ 특징 : 수직 바위(화강암) 벽면에 새겨놓은 그림

   ․ 용도 : 선사시대(청동기)때 제사장이 θ께 제사를 드리던 장소

   ․ 의의 : 군장(君長)이 다산과 풍농을 기원했던 제의(祭儀)문화의 현장.

 

    ※ 안동 임동(무실), 영천(보성), 경주(석장), 영일(칠포), 고령(양전), 울산(천전, 반구대), 남해 상주(양아리, 금산) 등


※ 한자 : 보일 ‘’자는 'θ'을 뜻하는 글자로서 선사시대 고인돌(Dolman) 위에 놓인 희생(犧牲)을 θ이 내려다시며,번제물의 향기를 흠향하시는 모습이며, '번제단(燔祭壇)'을 상징하는 글자  

 

삼한시대 때, 천군(天君)과 소도(蘇塗), 「가락국기」에 나오는 신귀간(神鬼干) 등, 관명(官名)에 나타나는 성직(聖職).

   

※십자가(十)는 효수(梟首)제도와 함께 耶蘇(J.C)이전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죄지은 자를 처형하던 일종의 형틀(刑具)이었다.

□ 新羅時代 ; 高句麗式 壁畵古墳(사적313호)

위치 ; 영주시 순흥면 읍내 1리 금바우(비봉산 후렵) 소재

특징 ; 무덤 밖은 왕릉 급의 큰 봉분이고, 무덤내부는 고구려 式으로서 에스키모 집처럼 직사각형의 화강암(요즘 시멘트 블록 같은)을 차곡차곡 어긋나게 수직으로 쌓아 올려 그 위에 뚜껑돌(개석)을 덮었다. 내부 돌 벽에는 백회(白灰)로 마감을 한 후에 다시 그 위에 당시 풍습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의 그림을 그려 넣은 벽화가 남아 있다.

 

※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식 벽화고분' 이며 '횡혈식 석실분(돌방무덤)' 이다.

 

 

 

 남한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구려식 벽화고분' 이며 '횡혈식 석실분(돌방무덤)' 임.


 

   의의 ; 벽화 내용 중에 긴 상투머리에 팬티차림을 한 젊은 力士가 달리기하는 자세로 양손에 큰 뱀을 잡고 무덤 내부의 입구를 지키고 있는데, 이것은 뱀(巳, 蛇, satan) 같은 사악한 외부 세력이 무덤 안의 주인을 해치지 못하도록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3 : 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人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민 21 : 1 ∼ 3 (호르산, 홍해길, 에돔땅을 거치면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θ께서 불뱀을 보내 물어 죽게 하사 모세가 기도하매 불뱀(모형)을 만들어 장대높이 달아 쳐다만 보면 살게 하신 일.) (사진Ⅱ- 3 · 4)
     시 60 : 4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기旗를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였나이다.)
      

        에  7 : 9 ~10 (효수 梟首 : 오십규빗 / 22.5m 높은 나무에 죄인의 목을 매다는 것)

 

        마 23 :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 灰漆한 무덤"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統一新羅 ; 平恩 王留洞(왕머리)「磨崖人物像」

    · 위치 :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왕머리) 소재.(사진Ⅲ 1~2)


    · 특징 : 수직 암벽에 새겨 놓은 인물 입상(立像)임. 통칭 역사학계에서는 불상(佛像; 보살입상)으로 보고 있으나 현재 머리(頭像)가 남아있지 않아 정확히 단정짓기 어려운 실정임. 입고 있는 옷매무새와 손에 들고 있는 꽃 등으로 보아 무조건 마애석상이라고 해서 불상으로 단정짓는 것이 현재로는 무리라고  봄. (그 이유로는 불상의 통견법의와는 전혀 다른 두루마기형식의 옷자락이라든가, 발가락이 노출된 신발을 신은 모습  그리고  일반 불상에서 볼 수 없는 手印등이며,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임)


    · 의의 ; 처음 발견한 서울 순복음 중앙교회 안수집사 유우식 선생(역사학회회원)과 평소 사도  도마"와 가야 기독교국가 연구에 식견이 높은 대구 말씀교회(기장) 조국현 목사 이 두분은 마애인물상 좌측 상단에 음각된 기하문을 근거로 J ․ C의 제자 중 의심 많았던 도마(刀馬, Tomas)의 像라고 력히 주장하며 기독교적 유물로 보고 있다.

 

    음각문양고대 히브리語로 봤을 때, 아인, 요크, 타우, 등으로  읽을 수 있고, 기도하는 도마”라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역사학계에서는 만들다가 만 미완성 '감실(龕室)'로 보고 있다. 

 

  J.C의 십자가 운명후, 12제자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복음사역을 감당할 때, 당시 인도의 아유타국(阿喩陀國)까지 전교 여행을 했던 도마가 왕실의 신임을 얻어 궁궐 증축 총감독을 맡았으나 어떤 실수(?)로 책임면피를 위해, AD 48년 당시 θ의 계시따라 동방나라 가야국 김해 땅으로 공주(허황옥 : AD 32~189, 나중에 김수로왕의 부인이 됨)를 보내게 될 때, 그녀를 수행케 하여 뱃길로 안전히 모시게 하였고, 그 인연으로 훗날 낙동강 물길을 따라 영주(평은 도마상)까지 다녀갔다는 주장이다. 그가 인도까지 왔다는 기록이 외경(外經)에 남아있음을 미뤄보아, 토마스의 동방(가야지방)진출설은 상당한 개연성이 있어 보이며,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별도의 연구와 고증이 필요하다 하겠다.(사진 Ⅲ 3~5)

 

 

 

   ※ 실제로 인도(印度)에서는 기독교 장자교단이 '토마스 교단'이며, 현재까지 인도에 "아유타"라는 지명이 세 곳에 남아 있는데, 공주(허황옥)의 고향으로 비정(比定)되는 곳이 현재 두 곳으로 압축이 된다. 한 곳은 산스크리트어(힌두어)를 사용하는 북부 내륙의 겐지스강 일원인 사류강(Saryu river) 인근이고, 또 한곳은 타밀어를 주로 사용하는 남동부 해안지방인 타밀 나두 州의 주도(州都)인 펜나이(영어로는 마드라스) 동쪽 바닷가에 있는 아요디아 쿠빰 지방이다. 

     

  남해 「대승사」 사명대사 지팡이에 새겨진 "†(십자가)표시""J ․ C는 θ의 아들"이라는 글귀.


 

□ 朝鮮時代 ; 慶山 慈仁「牧者․聖徒」像과 忠南 舒川 성경 최초 전래지

   · 위치 ; 경산시 자인면 일언리 소재.(사진Ⅳ-1)

   · 특징 ; 돌로 다듬었는데 하나는 목자가 양을 안고 있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성도가 두 손을 모으기도하는 모습.(대구 구남교회 曺國鉉 목사 발견 후, 보호관리 위해 자인읍사무소 경내로 이관) 


   · 의의 ;  우리나라에 舊敎(카톨릭)가 들어 온지 400년(임진왜란)이 지났고, 新敎(개신교)가 들어온 지 120여 년이 훨씬 지났지만, 그 앞서 오래 전에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들어 온 흔적이 여러모로 확인되고 있다.   

· 위치 ;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비인만, 마량진 포구) (사진Ⅳ 2 ~ 5)

· 특징 ; 우리나라 최초 성경전래지

· 의의 ;

 

    조선 말(孝, 顯宗朝) : 1816년 9월 5일 중국의 동쪽 바다(서해)에 해도 측량차 들어왔던 영국군함이 태안반도 서천군 비인만에 있는 마량진포구 앞에서 기관고장으로 표류하게 됨을 알고, 이양선(異洋船)인 알세스트號(함장 맥스웰 대령)와 리라號(함장 바실 홀 대령)를 조사하던 당시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맥스웰 함장이 금박입힌 대형 성경책 1권을 전해 준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성경 전래 역사"이다.

 

   '바실 홀(Basil Hall)'은 당시 조사나온 첨사 조대복과 비인 현감 이승렬에게 각각 화려한 장정의 책 한권씩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그가 1818년도 작성한 『한국 서해안 및 유구열도 항해기』에 쓰여있다. 그리고 순조실록 19권(순조 16년 7월 병인조)에 "其左右上下層 閤問無數書冊中 渠又 拈出二券 一券給縣監 一券給僉使"라는 내용으로보아 그가 받았다는 책은 성경(聖經)임이 분명하다. 

  

 

 

 

□ 조선 말(英·正祖朝) : 영주 단산 구구(아래배나무실) 천주교 유적

 

 · 위치 ; 영주시 단산면 구구 3리(下梨谷, 下梨室, 아래배나무실) (사진 V 1 ~ 6)

 

 · 특징 ; 한국 천주교 역사가 시작된 곳으로, 천주교회가  창립(1784년)되기 30년전에 이미 수계(修戒)생활을 했다. 

 

 · 의의 ;  이 곳은 풍산 홍씨 집성촌으로 천주교 최초의 수덕자농은 홍유한 선생의  유적이 남아있는 '톨릭(구교)의 성지' 이기도 하다. 후손 중에 홍낙민, 권철신 등 순교자 13명을 배출했으며 그 중에 6명이 천주교 순교성인 103위 안에 들어 안중근 의사 가문과 함께 카톨릭교 신앙명문이 되었다. 

 

   ※ 조선 말 경세치용(經世治用)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實學)사상이 대두되면서 성리학(性理學)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새로운 사상을 접하게 된 유학자가운데 남인(南人)이었던 성호(星湖) 이익(李瀷)은 당시 그의 스승이었던 남인의 영수인 미수 허목의 영정이 모셔져 있던 소수서원(紹修書院)과 순흥(順興)을 중심으로 경북 북부지역의 이퇴계(李退溪)의 발자취를 여러차례 찾게 되고, 훗날 그의 문하에서 농은 홍유한을 비롯 권철신과 정약용형제 등 카톨릭 신자 다수를 배출시킨바 있다.

 

 

 

□ 기타 도처에 남아있는 기독교 전래 유적

  이 외에도 통일신라 때 중국(장안)을 통해 경교(景敎)가 수입된 이래, 금강산 장안사의 「대진경교유허비」던가, 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성모상돌 십자가, 김해 김수로 왕릉 돌 비문이나 건물도리 위에 조각문양 등이 있다. (사진Ⅵ 1~6)

 

 

관련 사진자료

 

 

    (가흥동 암각화)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고령 양전동 암각화와 유사한 선사유적임.

다산과 풍농 등을 빌었던 신성한 제의문화의 현장임.

학자들의 견해가 갖지는 않으나 대충 방패형(무기류),검파형(칼 손잡이),우두형(황소머리)의 문양으로 보고 있음.

 

 

 

 (순흥 읍내리 고구려 벽화고분. 국가사적 313호)

묘실 내부에 사악한 것이 못 들게끔 수호신역할로서 뱀(사탄 · 흑암)을

두손으로 움켜 쥔 반라의 역사상임 

 

 

 

 

순흥읍내리 벽화고분 내의 어형깃발(일본의 "고이노보리" 문화의 원조임.) 

※ 그리스도교의 익투스(물고기)와의 연관성이 있음

 

 

 

 (당간지주)

당간(幢竿)재현모습, 고청사(古靑社) 윤광주 선생의 그래픽 작품

※ 시 60 : 4 (主를 敬畏하는 자에게 旗를 주시고, 眞理를 위하여 달게 하였나이다.)

 

※ 에 7 : 9~10(효수 梟首 : 죄인을 오십규빗 / 22.5m 높은 나무에 메닮)

 

 

 

 

일본 교토 박물관에 소장중인 고잔지(高山寺)의 "화엄회권" 내용중의 그림

< 의상대사가 당나라 유학가는 길에 장마로 고구려의 횡혈식 돌방무덤(폐고분으로

성경의 회칠한 무덤과 유사) 속에서 며칠 유숙할 때, 무덤 주인 노릇을 하는 

귀신이 나타나 의상일행의 목을 누르는 장면 >

 

 

 

 

 

영주시 평은면 강동 3리 (왕머리)마애상과 음각문양

 

 

 

 

왕머리 마애인물상 좌편 상단에 조각된 4개의 음각상형문.

보는 시각에 따라 미완성의 석감(石龕, 龕室)으로, 끝의 두 개는 고대 히브리 글자 문양으로도 해석(刀馬) 이곳은 인적이 드믄 아주 외진 곳이며,오래전 안동-영주를 있던 길목이었고,기복행위 흔적이 없는 게 특이하다. 

 

 

  

 (번제단의 의미)

    θ(示께 영계의 의전천사장(Rucifer, 女)이 무기(戈)를 들고 반란을 일으킨 사건을 뜻하는 글자. 

   구약시대 때, 제사장이 소(희생)를 잡아 하느님께 제물로 드리던 번제단(燔祭壇)을 본 딴 글자.

 

 

 

 

수로왕릉 입구 납릉정문(納陵正門) 위의 쌍어문

 

 

 

로마 도미틸라 카타콤(지하무덤)에 있는 물고기 문양

 

 

 

아요디아 힌두사원 정문 위의 쌍어문

 

 ※ 이 외에도 물고기 문양은 경남 "계원암", 경남 "신어산 은하사" 등에서 확인

 

 

경산 자인의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성도상과 어린 양을 안고 있는 목자상

(대구 구남교회 시무 조국현 목사 발견)

 

 

 

 

 

 

사진 Ⅵ- 1

불국사 출토 돌십자가(景敎)

한국교회사의 기초를 닦은 故 김양선 목사님이 60년대 초 안압지 준설시 발견된 것을 당시 불국사 주지 최월산 스님으로부터 얻게 된 것을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에 보관하게 되었음.

 

 

부석사 무량수전 바닥에 깔았던 녹유전(코발트 그라스)

(그리스 로마시대에 사용된 유리제품과 히브리 器皿이 실크로드를 통해 동방의 신라로 전해진 근거로 역사학계와 교회사가들이 보고 있다)

 

 

재현해 본 「코발트 글라스」녹유전(綠釉塼)

                        (2008년경 3.5㎥×3.3㎥ 면적 크기로 

재현하느데 든 경비가1천만원 소요)

 

 

 

동로마 시대때 사용되었던 유리기명(器皿, Roman glass)

 

 

 

사진 Ⅵ- 4 

발해시대의 삼존불(길림성 훈춘현 팔련성지 출토)

  남북조 시대(통일신라와 발해)에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 온 기독교의 일파인 경교(景敎)가 전래되었다. 위의 삼존불 가운데 주불의 가슴 가운데 '십자가'가 보이며, 특히 좌측 협시보살의 목에 걸린 '십자가'가 선명하다. 

(용산 전쟁기념관 소장)

 

 

발해 시대의 청동부절(靑銅符節)

  발해장군 섭리계(聶利計)가 발급한 신표(信標)로서, 하나는 중앙정부가 또 하나는 사자(使者)가 소지하며 합쳤을 때, 합동(점선 내)이란 글자가 확연히 보임. 이 청동부절은 물고기 형상인데, 기독교의 "익투스"를 상징함. 연해주 빠르띠잔스크 구역 니콜라에프까 성지에서 출토. 용산전쟁기념관 소장.

 

 

 

경주 안압지 출토 성모상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

 

* 故 김양선 목사가 당시 불국사 주지였던 최월산(崔月山) 스님으로부터 전해받은 것을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에 보관전시하게 된 것임.

 

 

리투아니아 빌뉴스 市에 있는 1676년도에 건립된

바로크 양식의 페트라스와 파울류스 성당 

 

 성당 내부 천정의 범선(구원의 방주) Ⅰ

 

 

 

양산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般若龍船) 접인도(接引圖) Ⅱ 

 

산동반도에서 신라로 항해중인 선묘용선(의상대사를 호위하는 모습) Ⅲ

 

原畵 : 일본 교또 박물관 소장(고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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