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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상 - 한대의 경학

東洋哲學

by 巡禮者 2010. 8. 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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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사상 - 한대의 경학

 

유가는 춘추전국 시기에 대단히 활발하였지만, 그것은 단지 '백가쟁명(百家爭鳴)' 속의 한 학파에 불과하였으며, 유가사상의 정치적인 보수성으로 인하여 천하를 격렬하게 쟁탈하고 있었던 봉건 집권자들의 중시를 결코 받지도 못했다. 진(秦)나라는 중국을 통일한 이후 법가를 중시하여 무력과 형벌로써 막 신설된 봉건집권을 공고히 할 것을 강조하고,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단행하여 육국(六國)의 유생들을 가혹하게 탄압했기 때문에 유가는 심각한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서한(西漢) 중기에 이르러 통일된 중앙집권의 봉건국가가 이미 공고해지자 한(漢) 무제(武帝)는 통일된 중앙집권의 사상 통치를 강화하기 위하여, 가혹한 형벌정책을 시행하여 멸망을 초래한 진(秦)왕조의 교훈을 받아들여, 백가(百家)를 배척하고 오직 유학(儒學)만을 존중하여 유가사상으로써 전국의 사상을 통일하였다. 당시에 동중서(董仲舒)를 대표로 하는 유가학파는 통치자의 요구에 부응하여 공맹(孔孟)의 학설을 위주로 하면서 봉건통치에 유리한 기타 각가(各家)의 사상을 흡수하여 하나의 봉건통치 학설, 즉 한대유학(漢代儒學)을 창조하였다.

 

이 학설은 유가경전에 대한 상세한 해석을 특징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한대경학(漢代經學)이라고도 일컫는다. 한대경학(漢代經學)은 유가학설이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부터 중국에서 유가사상의 지위는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여 기타의 사상유파를 능가하는 관학(官學)이 되어 천하독존(天下獨尊)의 지위를 획득했으며, 오랫동안 중국 봉건사회의 정통사상이 되었다.

 

동중서(董仲舒, BC179~BC104)는 광천(廣川: 지금의 하북 河北 조강현 棗强縣 광천진 廣川鎭) 사람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유가경전을 열심히 공부하여 성적이 매우 뛰어나 후에는 한(漢) 무제(武帝)의 인정을 받았는데, 그는 백가(百家)를 배척하고 오직 유학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한 무제는 그것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동중서는 이전의 원시유가의 사상에 대하여 일차적으로 중대한 발전과 개조를 진행하여, 한대(漢代) 신유가학파의 창시자이면서 가장 대표적인 사상 이론가가 되었다. 동중서의 사상 이론은 그의 ≪춘추번로(春秋繁露)≫ 속에 집중적으로 나타나 있다.

 

동중서는 먼저 한 무제에게 사상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봉건 '대통일'을 당연하면서도 반드시 준수해야 할 법칙으로 간주하여 유가사상으로써 중국인의 사상을 통일할 것을 주장하였다. 동중서는 선진(先秦) 원시유가의 '천명관'을 계승 발전시키고 신비주의적인 '음양오행(陰陽五行)' 학설을 흡수하여 왕권신수(王權神授)의 '천인감응(天人感應)' 신학이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하늘(天)'은 자연계와 인류사회의 최고 주재자이고, 황제는 '하늘(天)의 아들'로써 하늘의 의지와 통치권력을 나타내기 때문에 '천자(天子)'라고 일컬으며, 황제의 권력은 지고무상하고 신성불가침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동중서는 공자의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는 도덕 원칙과 '양존음비(陽尊陰卑: 양을 중시하고 음을 천시함)'의 신학이론에 근거하여 '삼강오상(三綱五常)' 학설을 제기하였다.

 

'삼강(三綱)'은 바로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이며, 그들 사이의 관계는 마치 천지음양(天地陰陽)과 같다. 신하 자녀 아내는 '음(陰)'에 속하고, 군주 부모 남편은 '양(陽)'에 속한다. '음'은 반드시 '양'에 복종해야 하며, 신하 자녀 아내는 반드시 군주 부모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 '오상(五常)'은 바로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이며, 그것은 '삼강(三綱)'의 기초 위에 있는 다섯 가지 도덕 준칙이다.

 

동중서는 '삼강오상'을 '하늘(天)'의 의지라 말하고 '하늘이 변하지 않으니 도 역시 변하지 않는다(天不變, 道亦不變)'는 논리를 제기하였다. '하늘(天)'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도(道)', 즉 '삼강오상'을 핵심으로 하는 봉건 정치원칙 윤리도덕 또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가경전에 대한 동중서의 해석과 발전을 거치면서 유가학설은 실제로 일종의 신학(神學)으로 변모하였다. 그가 제기한 정치와 도덕 신조인 '삼강오상'은 후에 오랫동안 중국인들의 정신적 멍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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