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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간절한 통회의 마음/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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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간절한 통회의 마음/배광하 신부

연중 제11주일 (루카 7, 36~8, 3) :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발행일 : 2007-06-17 [제2554호, 6면]

- 저를 버리지 마소서 -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태초에 에덴동산에는 모든 생명체가 암수 짝이 있었으나, 남자인 아담(사람)만이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깊은 잠에서 깨어난 아담 옆에 아리따운 여자가 서있게 됩니다. 하와가 탄생된 것이지요. 그때 아담이 기쁜 나머지 목청껏 부르짖은 탄성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 23)

아마도 아담의 탄성 뒤에 또 다른 말을 덧붙이라면 “얼씨구 좋구나, 지화자 좋구나!”가 제격일 것입니다. 이렇게 기뻐하였던 아담은 뱀의 꼬임에 넘어간 사랑하는 하와가 주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함께 먹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느님께서 아시고는 분명 아담에게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창세 3, 11)

이쯤 되면 사내대장부가 나무숲 사이에서 뛰어나와 무릎을 꿇고, “제가 따 먹었습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오”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와를 고발합니다. 방금 전 사랑과 기쁨의 탄성을 잊어버리고 말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 12)

곰곰이 묵상하면 인간이 지은 첫 번째 죄인 원죄는 선악과 열매를 따먹은 것이 아니라, 따먹은 뒤의 잘못된 처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뉘우치지 않았던 죄, 자신의 죄를 남에게 덮으려 하였던 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이 같은 죄를 끊임없이 짓고 있습니다. 자신은 깨끗한 척, 아무런 죄가 없다는 듯이 살면서 남을 단죄하는 성향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성경과 이스라엘 역사가 위대한 것은 이 같은 사실에 부끄러움 없이 그대로 고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임금은 단연코 다윗 왕입니다. 그 위대한 임금의 더러운 치부도 그들은 있는 그대로 밝히고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둘도 없는 충신이었던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세바와 간통한 사실까지도 말입니다. 그런데 진정 다윗이 위대한 까닭은 아담과 같은 치사한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자신의 죄를 솔직히 고백하는 회개의 자세였던 것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2사무 12, 13)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내가 죄를 지은 것입니다. 시편에는 다윗이 참회하는 기도를 상세히 적고 있습니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의 크신 자비에 따라 저의 죄악을 지워 주소서.

저의 죄에서 저를 말끔히 씻으시고

저의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하소서.

저의 죄악을 제가 알고 있으며

저의 잘못이 늘 제 앞에 있습니다.”(시편 51, 3~5)

내 죄를 인정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하면, 그 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안히 가거라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루카 7, 47)

세상 그 어떤 사람도, 성인 성녀나 위인들까지도 용서받지 않고 생을 살아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저마다의 용서 받음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자신도 용서하며 살았기에 그 위대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자신이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던 사람들의 단점을 살펴보면 내 자신 안에는 더 추악한 같은 단점과 잘못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신학은 눈물에서부터 출발한다고 합니다.

그가 예전에 지었던 수많은 잘못에서 용서받은 기쁨과 회개의 끊임없는 눈물에서 비로소 신학이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사도 성 바오로의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 24~25)

내 안에 있는 죄를 내 자신 스스로 볼 수 없으므로 이웃을 통하여 볼 수 있도록 하시는 주님, 그분께서는 나의 잘못에 대하여 탓하시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간절한 통회가 있을 때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이며, 그때 비로소 감격의 주님 말씀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7,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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