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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가난한 삶의 복된 풍요로움/ 배광하 신부

복음생각

by 巡禮者 2010. 7. 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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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9) 가난한 삶의 복된 풍요로움/ 배광하 신부

연중 제32주일(마르 12,38-44) : 가난한 자의 봉헌
발행일 : 2009-11-08 [제2671호, 10면]

가난함

가난의 복음을 외쳤던 ‘프란치스코’(1182~1226) 성인은 무절제했던 방탕한 젊은 시절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물질적인 부유함이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한다는 것을 알고 ‘가난’을 자신의 평생 배우자로 택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영성가인 ‘까를로 까렛도’(1910~1988)는 자신의 책<프란치스코 저는>에서 참된 가난을 체험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마음을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태 5,3) 즉, 가난한 이라고 모두 똑같지는 않다는 뜻이에요. 마음으로 가난한 이들도 있고 또 가난한 이들… 그저 가난한 이들도 있다는 말씀이지요.

제가 살아오면서 특히 근래 만난 가난한 이들을 생각해 보니 과연 그냥 가난하기만 한 가난한 이들도 있다는 걸 분명히 알겠더라고요. 그들은 그저 가난하기만 하고, 매우 슬프고 곧잘 성이 나있고 도무지 복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복된 가난한 이들도 분명히 기억이 나요. 가난이 아름다운 옷같은 사람들도 있었어요.

하느님의 거느리심 아래, 하느님의 현존에 힘입어, 자기들이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가난한 이들. 냉대를 받아도 사랑할 줄 아는 가난한 이들, 시련을 겪으면서도 참아내고 늘 희망에 차 있으며 곤경에 빠져도 꿋꿋한 가난한 이들, 자신의 삶 안에 계시는 하느님이 자기들을 곳간 없이 사는 하늘의 새들처럼 돌보아 주심을 드러낼 줄 아는 가난한 이들.”

실로 이같이 복된 가난한 이들이 존재합니다. 오늘 엘리야 예언자에게 자신의 남은 마지막 밀가루와 기름을 전부 내어드린 사렙타 마을의 가난한 과부가 그러하고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털어 헌금함에 봉헌한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그러합니다. 그들에게서 늘 발견하게 되는 공통점은 마음이 넓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산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그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이신 주님께서 항상 함께 계시고 모든 것을 다 마련해 주신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이 복된 가난한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봉헌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결단의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실로 가난하지만 가난한 삶의 복된 풍요로움을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된 봉헌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참된 봉헌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히브 9,28)

대개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이 갖고 있는 작은 것을 봉헌할 때에도 많이 불안해 합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계산하며 상당히 망설입니다. 그러니 늘 평화롭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그런 삶을 사니 늘 짜증이 나있고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선뜻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심리학자는 말합니다. “사람들이 지니는 불안의 80%는 전혀 일어나지 않을 상상에서 오는 불안이며, 17%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불안이며, 나머지 3%만이 그럴 가능성이 있는 불안인 것이다.” 결국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안의 대부분은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허위의 불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이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하다.”(마태 6,33-34)

이 같은 가르침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끊임없이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봉헌할 수도 없습니다.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거저 모든 것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계산적이지 않은 자신의 완전한 봉헌에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구하는 길은 자신을 내어주는 삶 밖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 같은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이 있을 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더욱 풍요롭게 하시며, 채워주실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다시 ‘까를로 까렛도’는 말합니다. “가난에 저주가 들어 있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는 부유와 권세와 허욕에 저주가 들어 있어 독이 된다는 것을. 가난이란 창조의 한 실수가 아니라 인간이 신비를 만나게 하며 하느님을 찾아 나서고 자기 자신을 끝까지 내놓게 하는 , 어쩌면 창조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장이라는 것을. 가난이란 하느님이 그대를 저버리신게 아니라 그대의 저 깊이에서 거저 베푸는 사랑과 벌거벗은 사랑을 캐내시는 참다운, 쓰라린 방법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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