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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근대철학-합리론과 경험론 <2>

古典의 향기

by 巡禮者 2012. 5. 1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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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근대철학-합리론과 경험론 <2>

 

 

스피노자하면 철학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란 명언을 남긴 걸로 유명한데, 지식채널e에서는 스피노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혹자는 말하길, 독일권에서는 이 말을 먼저 한 이는 루터이고 그의 일기장에 씌여 있던 말을 스피노자가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3. 스피노자의 내재론적 합리주의

 

 

스피노자 Benedictus de Spinoza(1632~1677)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에서 포르투갈계 유대인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이름은 ‘바뤼흐’. 이 말은 히브리어로 ‘축복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는 유대인들의 전통에 따라 유대 교단의 학교에서 헤브라이어와 성전을 공부했지만, 결국 유대교의 입장에서 멀어져 수학과 자연과학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스피노자는데카르트 철학의 영향으로 유대교의 성전과 학문을 강하게 비판한다.

 

 

 

 

유대교의 회유를 거절한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 파문을 당한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 “낮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고, 밤에도 그에게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앉아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 것이고, 그가 일어서 있을 때에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그가 밖에 나가도…그가 안에 있어도 저주가 있을지어다. 신은 그를 용서치 않을 것이며모든 천계의 저주를 통해 그를 전체 이스라엘 부족으로부터 격리시킬 것이다.”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파문을 전후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 상례였다. 요컨대 파문은 일종의 경고였던 셈이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회개’하지 않았다. 돈을 주겠다는 회유도, 격리시키겠다는 협박도, 암살 기도의 공포도 그를 움직이지 못했다. 스피노자는 부모님의 침대를 제외한 모든 상속을 거부했고, 유대인의 흔적을 없애려고 라틴어 ‘베네딕투스’로 이름을 바꾸었다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9) ‘범신론’ 사상가 스피노자 중,  서울신문 2011.12.26.

 

스피노자는 헤이그 근처의 레인스부르흐라는 작은 마을에 은거하였고 그 이후 포르부르흐와 헤이그에 이주한다.그는 안경알을 가는 일을 하여 생계를 유지하면서 철학에 매진한다. 그의 명성이 알려지자 하이델베르큰 대학은 그에게 교수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그 제안을 거절한다.

 

- 실체로서의 신과 자연

 

데카르트가 정신과 물질을 분리하여 생각했던 반면 스피노자는 물질과 정신을 하나로 통합하고자 시도한다. 그는 '나'의 존재가 아닌 '신'으로부터 출발한다. 그에게 신이란 만물의 존재조건이 되며 신의 존재는 스피노자에게 있어 최초의 직관이다.

 

스피노자에게 신은 그저 자신의 힘을 통해 자연을 낳고 그 자연속에 그대로 존재한다. 그것은 만물의 근원이다. 스피노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 안에 있고 신이 깃들지 않은 사물은 존재할 수도 없고 사유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신은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무한한 속성을 가진 실체'인 것이다. 스피노자에게 실체란 '스스로 존재하며 스스로를 통해 인식되는 것'이다.

 

신은 바깥이 없다. 신밖의 무엇이 신을 설명할 수 없고 신은 신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 결국 신은 유일한 실체가 되고 그러한 실체는 무한한 속성을 가지지만 인간의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속성은 스피노자에게 정신과 물질 두 가지 뿐이다. 스피노자는 신을 유일한 실체로 놓고 정신과 물질을 우리의 지성이 신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신의 속성으로 보었다. 신은 이 두가지 속성을 통해 자연속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정신과 물질은 신을 중심으로 평행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심신평행론'이라고 부른다.

 

- 다양한 만물은 신의 양태

 

스피노자는 자연을 두 가지 측면으로 구분한다.

그것은 만드는 자연(능산적 자연)과 만들어지는 자연(소산적 자연)이다.

신이 자신의 필연성을 통해 사물을 만들어 내는 면은 능상적 자연에 속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생겨난 만물은 소산적 자연에 속한다.

자연이라는 실체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켜 만물을 구성해낸다. 이렇게 변화하여 존재하게 되는 만물은 신의 양태라고 표현된다.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표현되는, 사유와 연장의 다양한 양태들로 드러나는 신이다.

신은 세계에서 자신의 힘을 부여함으로써 만물 안에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신의 역량이 가장 많이 깃들어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신의 힘은 각각 다른 존재에 다른 정도로 주어진다.

 

얼핏보면 스피노자는 범신론자로 여겨진다. 그렇지만 그를 범신론자로 규정하는 해석은 오늘날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고 한다. (범신론- 우주 또는 자연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 그것을 신으로 간주하는 사유의 경향이라고)

 

세가지 지식 - 스피노자의 인식론

 

세계를 이루고 있는 만물은 모두 신이라는 실체의 변형이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안다는 것은 결국 신 그 자체에 대한 탐구가 되고, 그것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리에 좀더 접근하게 된다. 스피노자는 "개별 사물을 더 잘 이해할수록 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지식을 세 가지 정도로 나누고 낮은 차원의 인식에서 더 높은 차원의 인식까지를 설명한다.

 

*제1종의 지식 : 상상의 단계로 속견으로서의 지식이다. 이것은 감각을 통해 얻은 지식으로 지극히 부정확한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보는 것만 으로 어떤 사물을 정학히 파악할 수는 없는 일이다.  감각을 통한 인식은 포괄성과 정확성을 결여한 것으로 본다.

 

*제2종의 지식 : 이성을 통하여 얻은 지식, 공통관념이 만들어내는 지식이다. 이것은 감각이 아닌 과학적 탐구를 통하여 얻게 되는 지식이다. 공통관념이란 사물의 성질로서 수학과 물리학의 개념들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성을 통한 지식은 속견의 지식보다 앞선 것으로 참된 지식이다. 여기서부터 인간은 과학으로 나아갈 수 있다.

 

* 제3종의 지식 : 스피노자가 직관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가장 높은 단계의 지식이다. 이것은 신의 속성들의 본성으로부터 개별 사물들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방식이다. 직관지는 스피노자에 의해 이상으로 제시된 것이다. 가까이 다가가야할 지식이고 모든 지식을 저울질하는 기준이지만 완벽한 직관지에 도달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 역할은 중요하다. 이성에 의한 지식이 과학적 연구의 지표가 된다면  직관지는 철학의 영역인 '전체'를 아우르는 진리에 대해 종합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 신에 대한 지적 사랑 ; 스피노자의 윤리학

 

고통, 슬픔등은 외부 자극에 의한 소극적인 반응일 뿐이다. 이러한 혼란스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우리의 지성을 동원하여 근본적인 원인을 전체 시스템에 비추어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그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하여 그정적인 사고로 바꾸는 일이다. 결국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신을 알아가려는 노력, '신에 대한 지적 사랑'으로 극복될 수 있다. 신에 대한 사랑은 필연적인 법칙을 이해함으로써 외부의 자극을 이겨내고 사물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윤리의 길인 것이다.

 

 

 

그가 평생을 몰두했던 주제는...

 

 

 

 

스피노자가 가진 사상의 급진성이랄까, 인문학의 본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조차 사라져 빈관으로 무덤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문구이기도 하고...

 

 

4. 경험론 철학의 정립 ; 로크

 

Locke(1632~1704) 청교도 집안에서 출생

 

웨스터민스터 학교에서 고전을 배운 로크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 연구에 전념

철학자로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던 중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의사 면허를획득하기도 했다. 당시 영국의 영향력 있는 정치가였던 샤프츠버리 백작을 만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의 주치의겸 고문이 되었고 1632년 샤프츠버리 백작이 죽자 그는 망명길에 올라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체류하면서 많은 대륙의 학자들과 교류하게되고 영국으로 돌아와 관직에 있기도 하였다.

 

 

        

1690년 『인간오성론』과 『시민정부론』을 출간하면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인간오성론』은 그를 경험주의 대가로 만든 책이고

『시민정부론』은 그를 근대 민주주의 이론의 선구가 되게 한 책이다.

 

- 경험을 통한 인식

로크는 인간이 지식을 어떻게 얻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한다. 우리의 지식이란 어떤 추상적인 관념이나 이데아 같은 것들에 관계된 것이 아나라 우리가 대상을 경험함으로써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그에게 모든 관념은 경험에서 비롯된다. 로크는 생득관념을 부인하지 않고 정신을 '백지상태'와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로크에게 정신은 결국 우리의 경험을 하나하나 채워지는 것이다.

 

-감각과 반성

그에 따르면 우리는 경험속에서 '감각'과 '반성'을 통하여 어떤 관념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감각은 경험이 가지는 우선적인 측면이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으로 물체의 표면적인 성질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감각을 통하여 사물에 대한 관념을 만들어간다. 경험은 반성이라는 또다른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감각기관에 의해 얻어지는 관념을 파악함으로써 2차적으로 생겨나는 정신의 활동이다. 이것은 감각을 통하여 파악한 관념을 근거로 의심하고 생각하고 추론하는 것이다.

 

- 단순관념과 복합관념

감곽과 반성을 통해 이간이 가지는 관념은 단순한 것이거나 복잡한 것이다. 로크는 이것을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으로 구분한다. 단순관념은 감각기관을 통해 개별적이고 수동적으로 생격난 관념이다.  그러나 복합관념은 좀더 능동적이다. 추론과 사유를 통해 단순관념들은 합쳐지기도 하고 나누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복합관념을 통하여 우리는 사물을 분리시키고 통합시킨다.

 

-제1성질과 제2성질

로크는 대상의 성질을 분리하기도 했다. 제1성질은 사물의 형태,고체성,연장, 운동 등 물체로부터 물체로부터 분리해 낼수 없는 것, 물체의 직접적 성질을 말한다. 제2성질은 물체가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고 인간의 감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관념, 즉 색깔, 소리, 향기등을 말한다.

 

제1성질은 실제 물체가 가지고 있는 성질이지만, 제2성질은 인간이 감각을 통해 얻는 물체에 대한 주관적인 관념이다. 로크는 이러한 구분을 통해 현상과 실재를 구분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실체가 그러한 성질들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로크는 경험을 통해 인간의 인식이 전개되는 과정을 잘 설명한다.

 

우리가 사회교과서에서 로크를 만나는 순간은 시민혁명전후이다. 자연상태를 놓고 홉스와 로크, 루소의 입장을 비교하며 그들을 훑고 간다. 홉스에게 자연상태가 만인의 만인에 의한 투쟁의 장, 공포와 죽음의 위협으로 얼룩진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로크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만인이 평등하고 자유롭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과 재산, 자유를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곳으로 이성이 한다.

 

로크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권리인 자연권을 개인의 생명, 건강,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로 다른 사람에게 침해받을 수 없는 것으로 본다. 로크는 철저히 인간의 자연권을 중심으로 국가와 정부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간은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를 결속하고 정부의 지배를 받아들인다. 로크에게 통치권을 절대적인 것이다. 로크는 통치권이 군주나 행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아나라고 말한다. 그는 다수를 위해 통치권을 입법부으 손에 넘겨주기를 원한다. 로크에게 행정부는 법의 아래에 있는 것이고 행정부의 권력은 때에 따라 제한받기도 한다. 그는 행정부가 시민의 신뢰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경우 그 행정부를 교체하는 최고의 권력은 시민에게 있다고 말한다.

 

결국 로크는 1688년 명예혁명을 시민의 저항권을 인정함으로써 정당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5. 사물은 '존재'하는가? - 버클리 Gerge Berkekey(1685~1753)

 

버클리 Gerge Berkekey(1685~1753)

 

 

아일랜드 킬케니아에서 태어남.그는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15세에 입학하여 수학과 논리학, 철학을 배우고 졸업이후 교수가 되었다가 종교에 뚯을 두어 영국 국교회 성직자의 길을 걷는다.  그는 아일랜드로 돌아와 1734년 주교의 지위에 올랐으며 67세의 나이로 옥스퍼드에 정착해 이듬해 죽음을 맞이했다.

 

- 존재=지각

버클리는 "존재한다는 것은 지각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사물이 지각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물의 존재는 그것이 지각된다는 것에 의존하며 지각을 통해 형성된 관념이 없다면 우리는 그것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우리 바깥에 존재하는 몯느 사물의 실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유물론적 철학이 주장하는 물질을 부정하기 위해서다. 버클리는 물질이라는 말은 무의미한 것이라고 말한다. 사물들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단지 그것이 지각될 때 뿐이라는 것이다.( 늘 다니던 길일지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주변에 있는 간판 모두를 기억해내지 못한다. 이 경우 버클리의 말은 와 닿는다. )

 

- 추상적 관념과 실재

버클리가 살고 있던 당시의 과학은 물질의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다. 버클리는 그 개념에 반대하면서 과학자들에게 감각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존재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실체는 추상적인 관념일 뿐 그 어디에도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감각적인 성질이지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버클리에게 '사물의 본질'이란 없다. 있는 것은 오로지 사물에 대한 경험일 뿐이다.

 

성공회 주교답게 버클리는 모든 질서와 경험의 문제를 신을 통해 설명한다. 그에게 사물의 근원이나 질서는 신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물질세계에 존재하는 법칙성과 질서는 신이 부여한 질서이고 법칙일 뿐이지 어떤 형이상학적 실체에 위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서를 파악하는 인간의 유한한 정신에 주어지는 경험을 움직이는 것도 결국은 신이다. 결국 과학자들이 물질에서 찾았던 궁극적 실재는 오로지 정신에서만 구할 수 있다. 그 정신이란 곧 신이다. 우리가 지각하지 않는 순간에도 신은 계속 지각하기 때문에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6. 회의하는 경험론 ; 흄

 

David Hume(1711~1776)

 

 

1711년 스코틀랜드의 천사이드에서 변호사의 아들로 출생했다. 12세에 에든버러 대학교에 입학하여 법학을 전공하였으나, 대신 철학을 공부하였다. 어린 시절 철학적 사고가 지나쳐 신경쇠약으로 고생하기도 했다.1734년에 브리스톨에서 사무원으로 취직하였으나 곧 프랑스로 옮겼으며, 이후 <인성론>을 집필하였다. 그러나 당대 평론가들의 악평을 받고 실망했으며 에든버러 대학교의 교수 응모에도 실패했다. 이후 귀족 부인의 가정교사로 있으면서 <영국사>를 집필하였다. 이단으로 의심받았으며, 그 여파로 에든버러 대학과 글래스고 대학의 교수직도 얻지 못했다. 1763년부터 파리에서 헤트포드 경의 비서로 일하다가 국무차관을 역임하고 1776년 사망했다

 

- 인상과 관념

흄에게 인간의 사유란 언제나 한계가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날개 달린 말의 정체는 새의 특징과 말의 특징을 결합한 것에 불과하듯이 정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경험의 테두리 안에 있는 것이다. 때문에 정신의 내용물은 감각기관을 통한 경험에 의해 주어진 것이고 흄은 그것을 '지각 perceptions'이라고 칭한다. 그는 지각을 '인상 impression'과 '관념ideas'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눈다. 인상은 무척 선명하고 구체적인 것이고 과념이란 볼수 없고 애매모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념은 인상들의 기억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무엇이 더 생생하게 남아 있는가가 두 가지를 간단히 구분하는 기준이다.

 

-인과관계와 자아의 부정

인간의 인식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한 흄은 인과관계의 법칙까지 의심을 넓혀간다. 흄은 원인과 결과를 관념으로 취급한다. 관념은 인상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원인과 결과라는 관념은 어떤 인상에서 비롯된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에 대한 인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인과 법칙이 생기는 것은 우리가 대상들 사이의 관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어 나타날 때 우리는 그 대상의 관게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그 반복적인 경험이 인과 법칙을 만들어 낸다. 결국 인과 법칙이란 우리의 경험을 통해 얻은 습관적인 신념일 뿐이다.

나아가 흄은 자아

의 존재까지 의심한다. 그는 자아에 대해 어떠한 관념도 가지지 않는다. 흄은 변하지 않는 자기 정체성을 부정한다. 그리고 자아를 단순히 '서로 다른 지각들의 묶음이나 집합'이라고 말한다. 흄에게 자기 정체성이라는 인상은 단순히 기억의 힘일 뿐이다.

 

- 감정을 통한 선악의 구분 : 흄의 윤리학

그는 도덕적 판단이란 사실과 관찰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도덕에 있어서 이성의 역할을 불충분한 것으로 간주하며 합리주의를 비판한다. 그에게 선악의 판단이란 이성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나라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에게 도덕의 문제, 특히 도덕적 인정이나 비난의 문제는 감정의 영역으로 '도덕감'에 지배받는 것이다. 선악은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에게 안정과 행복운 자기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공감을 얻을 때 바로 정의가 된다. 결국 이기주의는 정의의 기본적인 동기가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공적 이익과 연관된다는 공감은 그 정의가 도덕적 승인을 받는 근거가 된다.

 

흄의 윤리학은 어떤 이성적 원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적 요소를 통해 결정되는 것으로 경험주의와 합리주의를 가르는 또다른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 내용은 『청소년을 위한 서양철학사』,서용순,두리미디어 에서 대부분 인용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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