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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 제5회 스위스 월드컵

스포츠/월드컵

by 巡禮者 2011. 5. 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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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1954년 월드컵은 유럽의 스위스에서 6월 16일부터 7월 4일까지 총 19일간 치러졌다. 이 대회는 피파 창설 50주년을 맞이, 피파 본부가 위치한 스위스에서 치러진 기념비적인 월드컵으로 역사 속에 기억되고 있다. 또한 월드컵은 1954년 대회에 이르러 대부분의 강호들이 참가하는 진정한 세계선수권대회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였고, 조별리그를 거쳐 토너먼트 전으로 돌입하는 오늘날의 진행 방식을 확립시켰다. 그로 인해 1954년 대회를 진정한 월드컵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도 생각 이상으로 많다.

 

개최국과 대회기간: 스위스, 1954년 6월 16일~7월 4일
참가국: 16개국
총 득점: 26경기 140골, 평균 5.38
총 관중: 889,500명, 평균 34,212
우승국: 서독(통산 1회)

 

 

지역예선

당시로써는 역대 최다에 해당하는 총 45개국이 참가 신청서를 제출했으며, 개최국 스위스와 전 대회 우승국 우루과이에겐 자동 출전권이 주어졌다. 남은 14개의 티켓은 유럽에 10장, 남미에 1장, 북중미와 아프리카 그룹에 1장, 그리고 아시아에 1장이 배정됐는데, 대한민국은 처음으로 이 대회 지역예선에 참가하여 일본과 본선 진출권을 놓고 다퉜다. 종합 스코어 7-3으로 일본을 완파한 대한민국은 사상 첫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한편 남미가 지난 대회보다 대폭 줄어든 1장의 티켓밖에 부여받지 못한 이유는 우루과이의 자동 출전권 확보 및 아르헨티나의 기권 때문이었다. 여기에 페루를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참가 신청서 제출을 포기하면서 남미 지역예선은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3개국만이 1장의 티켓을 놓고 다투는 조촐한 형태로 치러졌다.

 

그 밖에 6조에 소속된 스페인과 터키의 예선전에서는 1승 1패를 기록한 두 팀이 재경기에서도 2-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추첨으로 본선 진출 팀을 결정짓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행운의 여신으로부터 미소를 선물 받은 쪽은 터키였는데, 당시에는 원정경기 득점 우선원칙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스페인은 종합 스코어 4-2(4-1 승, 0-1 패)로 우위를 점하고도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그룹 대륙 티켓 예선참가국 본선진출국
1 유럽 1 서독, 자를란트, 노르웨이 서독
2 유럽 1 벨기에, 스웨덴, 핀란드 벨기에
3 유럽 2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즈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4 유럽 1 프랑스,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프랑스
5 유럽 1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6 유럽 1 스페인, 터키 터키
7 유럽 1 헝가리, 폴란드(기권) 헝가리
8 유럽 1 체코,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9 유럽 1 유고, 그리스, 이스라엘 유고
10 남미 1 브라질, 파라과이, 칠레 브라질
11 북중미•아프리카 1 멕시코, 미국, 아이티 멕시코
12 아시아 1 대한민국, 일본, 대만(기권) 대한민국

 

 

본선 요약

지난 1950년 대회의 비합리적인 2차 풀리그 방식에서 탈피, 1라운드를 조별리그 방식으로 치르고 8강부터 토너먼트 전에 돌입하는 새로운 방식이 채택됐다. 이러한 1954년 대회의 본선 진행방식은 1974년 대회에서 2차 리그제가 새롭게 도입될 때까지 일관적으로 유지되는 모습을 보였다. 현 월드컵 본선 시스템에 모태를 제공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기도 하다.

 

이 대회 본선 시스템의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는 조별리그에 풀리그 방식이 도입되지 않았다는 점인데, 각 조에 소속된 4개 팀은 나머지 3팀과 모두 경기를 치르지 않고 2경기만을 치렀다. 그 이유는 피파가 조직 위원회의 투표에 따라 각 조의 4개 팀을 시드 배정국과 미배정국으로 분류하는 한편, 시드 배정국과 미배정국끼리의 경기를 조별리그 일정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국가

시드배정국1(강팀) 

시드배정국1(강팀) 

시드배정국1(강팀) 

 시드배정국1(강팀)

시드배정국1(강팀)

 -

 경기없음

 경기1

 경기2

시드배정국2(강팀)

 경기없음

 -

 경기1

 경기2

미배정국1(약팀)

 경기1

 경기2

 -

 경기없음

미배정국2(약팀)

 경기1

 경기2

  경기없음

-

 

 

대한민국이 소속된 B조를 예로 들면 헝가리와 터키는 조직 위원회가 지정한 시드 배정국(강팀)이었으며, 반면 서독과 대한민국은 시드를 배정받지 못한 미배정국(약팀)이었다. 따라서 헝가리-터키, 서독-대한민국 경기는 조별리그 일정에서 제외됐고, 대한민국의 경우 헝가리와 터키를 상대로 2경기만을 치렀다. 이 2경기 결과는 0-9, 0-7 패배였으며, 특히 헝가리전 0-9 패배는 아직도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패배 타이기록으로 남아 있다.

 

한편 1954년 대회 조별리그에는 득실차와 다득점 등으로 순위를 가리는 현재의 시스템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따라서 2, 3위 팀이 승점 동률을 기록할 경우에는 8강 진출권을 놓고 플레이오프 형태의 재경기를 치러야 했다. 그 결과 B조의 서독과 터키, D조의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나란히 1승 1패를 기록함에 따라 플레이오프 재경기를 추가적으로 치렀다. 8강에 오른 것은 서독과 스위스였다.

 

그 밖에 1954년 대회 최강의 우승후보로는 ‘매직 마자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헝가리가 손꼽혔지만 최후에 웃은 팀은 프리츠 발터가 이끄는 서독이었다. 헝가리는 대회 내내 월드컵 역사에 길이 남을 만한 폭발적인 공격력을 과시했음에도 불구, 서독과의 결승전에서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2-3으로 역전패하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사람들은 서독의 이 극적인 우승을 ‘베른의 기적’이라 부르고 있다.

 

 

* 플레이오프 결과: 서독 7-2 터키, 스위스 4-1 이탈리아. 

 

 

주요 선수

우승국은 서독이었지만 1954년 대회를 화려하게 수놓은 주인공들은 대회 내내 차원이 다른 공격축구를 선보인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이었다. 그중에서도 페렌츠 푸스카스는 서독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8강전과 4강전에 연속으로 결장했음에도 불구, 대회 MVP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푸스카스가 이 대회에서 선보인 왼발 슛과 개인기는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명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대한민국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서독과의 결승전까지 총 5경기에서 11골을 폭발시킨 득점왕 코치슈의 맹활약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코치슈는 서독과의 결승전을 제외한 4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으며, 한 대회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을 성공시킨 3명의 선수 중 한 명 - 나머지 두 명은 쥐스트 퐁텐(58년)과 게르트 뮐러(70년) - 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한편 ‘베른의 기적’을 연출하며 통산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한 서독 대표팀에서는 프리츠 발터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다. 주장 발터는 탁월한 테크닉과 안정된 경기운영을 앞세워 서독의 공격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그라운드 위의 감독과도 같은 존재로서 팀 전체를 리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비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낸 헬무트 란 역시 서독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손꼽힌 스타 공격수였다.

 

 

수상 기록

MVP

1위 페렌츠 푸스카스(헝가리)
2위 산도르 코치슈(헝가리)
3위 프리츠 발터(서독)

 

득점
1위 산도르 코치슈(헝가리/11골)
2위 에리히 프롭스트(오스트리아/6골), 막스 몰록(서독/6골), 요셉 휘기(스위스/6골)
5위 페렌츠 푸스카스(헝가리/4골), 헬무트 란(서독/4골) 外 5명

 

베스트 팀
골키퍼: 줄라 그로시치(헝가리).
수비수: 에른스트 오츠비르크(오스트리아), 자우마 산토스(브라질), 호세 산타마리아(우루과이).
미드필더: 프리츠 발터(서독), 요셉 보시크(헝가리).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 난도르 히데쿠티, 졸탄 치보르, 산도르 코치슈(이상 헝가리), 헬무트 란(서독).

 

 

스위스 월드컵 이모저모

01

1954년 대회에서는 TV 중계가 보편화되어 유럽 각지에서 월드컵 경기가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축구 경기의 TV 중계가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월드컵 중계는 1954년 대회가 역사상 최초였다.

02

대한민국은 1954년 대회를 통해 월드컵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지역예선에서는 일본과 정면 대결을 펼쳤다. 본래 대한민국은 대회 규정에 맞게 홈&어웨이 방식으로 일본과의 예선전을 치러야 했으나 극심한 반일감정 및 6.25 전쟁 피해로 인해 두 경기를 모두 도쿄에서 치렀다. 경기 결과는 1차전은 대한민국의 5-1 승리, 2차전은 2-2 무승부였다.

03

이 대회에서는 득점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헝가리의 대한민국전 9-0 승리는 1974년 유고 9-0 자이르, 1982년 헝가리 10-1 엘살바도르 경기와 함께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헝가리전 9실점 기록은 엘살바도르가 10실점을 내주기 전까지 28년 동안 월드컵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04

또한 준우승국 헝가리는 무려 27골을 성공시키며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을 수립하는 한편, 최다 득실차(+17) 및 1경기 평균 최다 득점(5.4골) 기록까지 새롭게 탄생시켰다. 반면 대한민국은 헝가리와 반대되는 한 대회 최다 실점(16골) 및 한 대회 최저 득실차(-16)와 같은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

05

개최국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8강전에서는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 수립됐다. 도합 12골이 터져 나온 이 경기는 오스트리아의 7-5 역전승으로 마무리 됐다.

06

한편 헝가리와 브라질의 8강전에서는 양 팀 선수들 간에 난투극이 벌어져 ‘베른의 전쟁’이란 얼룩진 기록을 남겼다. 격렬한 실랑이 끝에 헝가리의 보시크, 브라질의 니우톤 산토스와 움베르투 등이 퇴장을 당했으며,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 팀 선수들은 주먹다짐을 벌였다. 조직위원회 측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까지 투입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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