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선수
우승국은 서독이었지만 1954년 대회를 화려하게 수놓은 주인공들은 대회 내내 차원이 다른 공격축구를 선보인 ‘매직 마자르’ 헝가리 대표팀이었다. 그중에서도 페렌츠 푸스카스는 서독전에서 당한 부상으로 인해 8강전과 4강전에 연속으로 결장했음에도 불구, 대회 MVP로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푸스카스가 이 대회에서 선보인 왼발 슛과 개인기는 세계 최고의 선수라는 명성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대한민국과의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서독과의 결승전까지 총 5경기에서 11골을 폭발시킨 득점왕 코치슈의 맹활약도 놀라운 수준이었다. 코치슈는 서독과의 결승전을 제외한 4경기에서 모두 득점을 기록했으며, 한 대회에서 두 번의 해트트릭을 성공시킨 3명의 선수 중 한 명 - 나머지 두 명은 쥐스트 퐁텐(58년)과 게르트 뮐러(70년) - 으로 이름을 남기고 있다.
한편 ‘베른의 기적’을 연출하며 통산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한 서독 대표팀에서는 프리츠 발터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다. 주장 발터는 탁월한 테크닉과 안정된 경기운영을 앞세워 서독의 공격을 주도했을 뿐 아니라, 그라운드 위의 감독과도 같은 존재로서 팀 전체를 리드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비 때마다 해결사 역할을 해낸 헬무트 란 역시 서독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손꼽힌 스타 공격수였다.
수상 기록
MVP
1위 페렌츠 푸스카스(헝가리) 2위 산도르 코치슈(헝가리) 3위 프리츠 발터(서독)
득점 1위 산도르 코치슈(헝가리/11골) 2위 에리히 프롭스트(오스트리아/6골), 막스 몰록(서독/6골), 요셉 휘기(스위스/6골) 5위 페렌츠 푸스카스(헝가리/4골), 헬무트 란(서독/4골) 外 5명
베스트 팀 골키퍼: 줄라 그로시치(헝가리). 수비수: 에른스트 오츠비르크(오스트리아), 자우마 산토스(브라질), 호세 산타마리아(우루과이). 미드필더: 프리츠 발터(서독), 요셉 보시크(헝가리). 공격수: 페렌츠 푸스카스, 난도르 히데쿠티, 졸탄 치보르, 산도르 코치슈(이상 헝가리), 헬무트 란(서독).
스위스 월드컵 이모저모
01 |
1954년 대회에서는 TV 중계가 보편화되어 유럽 각지에서 월드컵 경기가 생중계되기 시작했다. 그 전에도 잉글랜드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축구 경기의 TV 중계가 활성화되고 있었지만, 월드컵 중계는 1954년 대회가 역사상 최초였다. |
02 |
대한민국은 1954년 대회를 통해 월드컵 무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으며, 지역예선에서는 일본과 정면 대결을 펼쳤다. 본래 대한민국은 대회 규정에 맞게 홈&어웨이 방식으로 일본과의 예선전을 치러야 했으나 극심한 반일감정 및 6.25 전쟁 피해로 인해 두 경기를 모두 도쿄에서 치렀다. 경기 결과는 1차전은 대한민국의 5-1 승리, 2차전은 2-2 무승부였다. |
03 |
이 대회에서는 득점과 관련된 여러 가지 기록이 쏟아져 나왔다. 우선 헝가리의 대한민국전 9-0 승리는 1974년 유고 9-0 자이르, 1982년 헝가리 10-1 엘살바도르 경기와 함께 월드컵 역사상 최다 점수 차 승리로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헝가리전 9실점 기록은 엘살바도르가 10실점을 내주기 전까지 28년 동안 월드컵 한 경기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
04 |
또한 준우승국 헝가리는 무려 27골을 성공시키며 한 대회 최다 득점 기록을 수립하는 한편, 최다 득실차(+17) 및 1경기 평균 최다 득점(5.4골) 기록까지 새롭게 탄생시켰다. 반면 대한민국은 헝가리와 반대되는 한 대회 최다 실점(16골) 및 한 대회 최저 득실차(-16)와 같은 불명예스런 기록을 남겼다. |
05 |
개최국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8강전에서는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 수립됐다. 도합 12골이 터져 나온 이 경기는 오스트리아의 7-5 역전승으로 마무리 됐다. |
06 |
한편 헝가리와 브라질의 8강전에서는 양 팀 선수들 간에 난투극이 벌어져 ‘베른의 전쟁’이란 얼룩진 기록을 남겼다. 격렬한 실랑이 끝에 헝가리의 보시크, 브라질의 니우톤 산토스와 움베르투 등이 퇴장을 당했으며, 경기가 끝난 후에도 양 팀 선수들은 주먹다짐을 벌였다. 조직위원회 측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까지 투입해야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