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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유럽 | 2 | 서독,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핀란드 | 서독 오스트리아 |
2 | 유럽 | 2 | 벨기에, 프랑스, 아일랜드, 네덜란드, 키프러스 | 벨기에 프랑스 |
3 | 유럽 | 2 | 소련, 체코, 웨일즈, 아이슬란드, 터키 | 소련 체코 |
4 | 유럽 | 2 | 헝가리, 잉글랜드, 루마니아, 스위스, 노르웨이 | 헝가리 잉글랜드 |
5 | 유럽 | 2 | 유고, 이탈리아, 덴마크, 그리스, 룩셈부르크 | 유고 이탈리아 |
6 | 유럽 | 2 |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스웨덴, 포르투갈, 이스라엘 |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
7 | 유럽 | 1 | 폴란드, 동독, 몰타 | 폴란드 |
8 | 남미 | 1 | 브라질,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 브라질 |
9 | 남미 | 1 | 페루, 우루과이, 콜롬비아 | 페루 |
10 | 남미 | 1 | 칠레, 에콰도르, 파라과이 | 칠레 |
11 | 북중미 | 2 | 최종예선: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멕시코, 캐나다, 쿠바, 아이티 |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
12 | 아프리카 | 2 | 최종: 알제리-나이지리아, 모로코-카메룬 | 알제리 카메룬 |
13 | 아시아•오세아니아 | 2 | 최종예선: 쿠웨이트, 뉴질랜드, 중국, 사우디 | 쿠웨이트 뉴질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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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아디다스에 의해 월드컵 MVP 및 득점왕에게 정식 트로피가 수여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월드컵 MVP는 기자단에 의해 비공식적으로 선정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참고로 MVP에는 ‘아디다스 골든볼’이란 명칭이, 득점왕에는 ‘아디다스 골든슈’라는 명칭이 새롭게 붙여졌다. 첫 번째 수상의 영예는 MVP와 득점왕 모두 파올로 로씨(이탈리아)가 안았다. |
02 |
유로 1980 우승국 서독의 알제리 전 패배는 1982년 대회의 최대 이변 중 하나였다. 특히 서독의 유프 데어발 감독은 “만약 알제리에 승리하지 못하면 경기 후 집으로 돌아가겠다” 는 경솔한 발언을 입에 담았다가 진짜로 패하는 바람에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
03 |
서독을 격파한 당시 알제리 대표팀에는 자멜 지단(Djamel Zidane)이 활약하고 있었는데, 이 선수는 다름 아닌 지네딘 지단의 친삼촌이다. |
04 |
처녀 출전국 알제리는 2승 1패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 서독과 오스트리아에 득실차에서 밀려 3위로 탈락하는 분루를 삼켰다. 이러한 알제리의 탈락에는 서독과 오스트리아가 조별리그 최종전을 펼친 노골적인 ‘공생 작전’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
05 |
당시 서독은 조별리그를 통과하기 위해 반드시 오스트리아를 꺾어야 했고, 오스트리아는 서독에 2점 차 이내로만 패배하면 무난히 2차리그로 향할 수 있었다. 서독의 흐루베쉬가 전반 10분 만에 선제골을 터뜨려 스코어가 1-0이 되자 양 팀 선수들은 공격을 진행하지 않고 볼만 돌리며 시간을 보냈다. 1-0 스코어를 유지하면 양 팀 모두 2차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06 |
이에 스페인 홈 관중들은 경기장에 오물을 투척하며 서독과 오스트리아 선수들에게 ‘Fuera! Fuera!(나가라! 나가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서독 언론들 역시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경기였다” 고 대표팀을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심지어 프랑스의 이달고 감독은 “서독과 오스트리아 선수들에게 노벨 평화상 트로피가 주어져야 한다” 며 이 경기를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
07 |
결국 피파는 이러한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 조별리그 최종전을 동시간대에 진행시키는 새로운 규정을 도입해야 했다. 이 규정은 1986년 대회부터 적용되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
08 |
프랑스와 쿠웨이트의 경기에서 일어난 판정 논란 역시 이 대회의 대표적인 화젯거리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지레스는 후반 39분에 팀의 4번째 득점을 성공시켰음에도 불구, 주심에 의해 어처구니없는 취소 판정을 받았다. 스투파르 주심이 “관중들의 피리 소리를 선수들이 주심의 휘슬로 혼동해 플레이를 멈췄다”는 쿠웨이트 왕자 파하드의 항의를 받아들여 득점 판정을 번복해 버린 것이다. |
09 |
멀쩡한 골을 취소당한 이달고 감독과 프랑스 선수들은 이 판정을 납득하지 못해 경기 기권을 고려하기까지 했다. 일각에서는 ‘오일쇼크’가 전 세계를 강타함에 따라 파하드 왕자의 주장을 거스를 수 없었다는 설까지 제기했다. 경기 후 스투파르 주심은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고, 파하드 왕자에게도 경고가 내려졌으며, 언론들은 월드컵의 권위 자체가 떨어졌다며 이 판정을 두고두고 비난했다. |
10 |
한편 북아일랜드의 노먼 와이트사이드는 이 대회를 통해 펠레가 보유하고 있던 역대 최연소 출전 기록(17세 235일)을 갱신시켰다. 유고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 모습을 드러낸 와이트사이드의 당시 나이는 정확히 17세 41일이었다. |
11 |
최강 브라질의 이탈리아 전 패배에 이은 탈락은 이 대회 최대 이변이자 월드컵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형 사건이었다. 브라질 미드필더 소크라테스는 이 패배를 ‘교통사고’에 비유했으며, 자국 내에서 2명이 자살하고 5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소식까지 들려왔다. 또한 브라질 내에서 ‘파올로 로시’는 한 동안 암묵적인 금지어로 통용됐다고 한다. |
12 |
서독과 프랑스의 4강전은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승부차기에 의해 승패가 갈린 경기였다. 120분 동안 3-3 으로 승패를 가리지 못한 양 팀 선수들은 결국 승부차기로 돌입했고, 월드컵 역사상 첫 승부차기는 서독의 5-4 승리로 끝이 났다. |
13 |
이 경기에서 서독의 골키퍼 슈마허는 골문을 향해 쇄도하던 프랑스 수비수 바티스통을 무릎 공격으로 쓰러뜨려 끔찍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바티스통은 슈마허의 공격에 이빨과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음에도 불구, 주심으로부터 반칙을 얻어내지 못했다. 플라티니는 이를 ‘월드컵 역사상 최악의 오심’에 비유하며 불만을 폭발시켰다. |
14 |
이탈리아 대표팀의 주장이자 주전 골키퍼였던 디노 조프는 월드컵 역사상 최고령 우승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조프의 나이는 만으로 40세였으며, 이 기록은 아직까지 갱신되지 않고 있다 |
1990년 제14회 이탈리아 월드컵 (0) | 2011.05.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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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제13회 멕시코 월드컵 (0) | 2011.05.01 |
1978년 제11회 아르헨티나 월드컵 (0) | 2011.05.01 |
1974년 제10회 서독 월드컵 (0) | 2011.05.01 |
1970년 제9회 멕시코 월드컵 (0) | 2011.05.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