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994년 제15회 미국 월드컵

스포츠/월드컵

by 巡禮者 2011. 5. 1. 17:34

본문

제15회 1994년 월드컵은 북중미의 미국에서 6월 8일부터 7월 8일까지 총 30일간 치러졌다. 개최국 미국은 ‘축구 불모지’라는 간판을 벗어던지기 위해 “축구의 역사를 만들자(Making Soccer History)”라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미국 시장 개척에 관심을 갖고 있던 피파 역시 적극적으로 지원 사격에 나섰다. 그 결과 94년 대회는 월드컵 역사상 최다 관중(약 358만명)을 동원했음은 물론, 경기 내용 면에서도 지난 대회보다 박진감이 더해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 세계적으로 흥행을 거뒀다. 우승은 이탈리아를 승부차기로 제압한 브라질이 차지했다.

 

개최국과 대회기간: 미국, 1994년 6월 17일~7월 17일
참가국: 24개국
총 득점: 52경기 141골, 평균 2.71
총 관중: 3,587,538명, 평균 68,991
우승국: 브라질(통산 4회)

 

 

지역예선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1982년 알제리, 1986년 모로코, 그리고 1990년 카메룬 등의 계속되는 활약에 힘입어 아프리카의 본선 티켓이 2장에서 3장으로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그로 인해 가장 많은 티켓(14장)을 확보하고 있던 유럽은 아프리카 측에 1장을 양보해야 했으며, 북중미 역시 개최국 미국의 자동 출전으로 인해 0.5장의 티켓을 추가로 부여받았다. 그러나 북중미 2위 팀은 오세아니아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른 뒤 남미 팀과 또 다시 2차 플레이오프를 치러야 했던 만큼 0.5장의 혜택을 살려내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 유럽 예선에서는 또 다시 강호들이 줄줄이 탈락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특히 전 대회 4강팀이자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의 탈락은 지역예선 최대의 충격이자 일대 사건이었다. 프랑스 역시 불가리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뼈아픈 역전패를 당해 두 대회 연속 본선에 오르지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 밖에 유로 1992 우승팀 덴마크와 전통의 강호 체코 역시 지역예선에서 고배를 마셨고, 유고의 경우 내전으로 인해 참가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남미 예선에서도 이변은 어김없이 일어났다. 1986년 대회 우승, 1990년 대회 준우승을 통해 브라질을 따돌리고 남미 최강으로 군림하던 아르헨티나가 플레이오프로 추락하고 만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발데라마와 아스프리야가 이끄는 콜롬비아에 믿기 어려운 0-5 대패를 당하며 조 2위로 밀려나는 충격을 경험했다. 결국 바실레 감독은 대표팀에서 은퇴한 마라도나까지 복귀시키는 강수를 뒀지만, 호주와의 플레이오프에서도 고전 끝에 본선 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예선의 경우 지난 대회와 다르게 중동 및 극동의 구분 없이 통합 형태로 치러졌다. 최종예선을 홈&어웨이 방식이 아닌, 제3의 장소인 카타르 도하에서 단기간 풀리그 방식으로 진행시켰다는 점도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대한민국은 이라크, 사우디와의 무승부 이후 일본에 0-1로 패함으로써 탈락 위기를 맞이했지만, 이라크가 일본과의 최종전에서 극적인 2-2 무승부를 거두는 바람에 기적의 본선 진출을 일궈낼 수 있었다. 이 ‘도하의 기적’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대형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룹 대륙 티켓 예선참가국 본선진출국
1 유럽 2 이탈리아, 스위스, 포르투갈, 스코틀랜드, 몰타, 에스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2 유럽 2 노르웨이, 네덜란드, 잉글랜드, 폴란드, 터키, 산마리노 노르웨이
네덜란드
3 유럽 2 스페인, 아일랜드, 덴마크, 북아일랜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알바니아 스페인
아일랜드
4 유럽 2 루마니아, 벨기에, 체코, 웨일즈, 키프러스, 파로군도 루마니아
벨기에
5 유럽 2 그리스, 러시아, 아이슬란드, 헝가리, 룩셈부르크 그리스
러시아
6 유럽 2 스웨덴, 불가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스라엘 스웨덴
불가리아
7 남미 1.5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페루
* 플레이오프: 아르헨티나-호주
콜롬비아
아르헨티나
8 남미 2 브라질, 볼리비아, 우루과이,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브라질
볼리비아
9 북중미 1.5 최종예선: 멕시코, 캐나다,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 플레이오프: 캐나다-호주
멕시코
10 아프리카 1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알제리 나이지리아
11 아프리카 1 모로코, 잠비아, 세네갈 모로코
12 아프리카 1 카메룬, 짐바브웨, 기니 카메룬
13 아시아 2 최종: 사우디, 대한민국, 일본, 이라크, 이란, 북한 사우디
대한민국
14 오세아니아 0.5 최종: 호주-뉴질랜드
* 플레이오프: 호주-캐나다, 아르헨티나-호주
-

 

 

본선 요약

본선 진행방식에 있어서는 지난 1990년 대회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승리 팀에게 승점 2점이 아닌 3점이 주어지고, 선수교체 인원이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났다는 것 정도가 1994년 대회를 통해 일어난 눈에 띄는 변화였다. 그 외에도 오프사이드 기준이 이전보다 완화되는 한편, 골키퍼가 백패스를 손으로 잡는 행위가 금지되는 등 공격축구를 이끌어내기 위한 피파 측의 노력은 매우 적극적으로 감행됐다. 그 결과 1994년 대회는 1990년 대회보다 총 득점 수가 26골이나 늘어났다.

 

조별리그에서 일어난 최대 사건은 디에고 마라도나의 도핑 테스트 적발에 이은 출전 자격 박탈이었다. 코카인 양성 반응을 나타낸 마라도나는 나이지리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 이후 더 이상 경기에 나설 수 없었고,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한 아르헨티나 역시 16강에서 루마니아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편 대한민국은 스페인, 독일 등의 강호들과 호승부를 연출하며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지만, 볼리비아를 상대로 승점 3점을 획득하지 못해 아쉽게 16강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다.

 

16강 토너먼트 이후 대회 전체를 자신의 독무대로 만든 스타 중의 스타는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였다. 나이지리아와의 16강전, 스페인과의 8강전, 그리고 불가리아와의 4강전에서 도합 5골을 폭발시킨 바조는 호마리우와 스토이치코프 등을 따돌리고 가장 강력한 MVP 후보로 떠올랐다. 그러나 바조는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그 유명한 승부차기 실축을 범했고, 우승 트로피마저 브라질에 내줘야 했다. 바조가 1954년 대회푸스카스1974년 대회크루이프에 이어 비운의 2인자로 이름을 올리고 만 순간이었다. 반면 이탈리아를 격침시키고 대회 정상에 오른 브라질은 무려 2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이 우승을 통해 브라질은 독일과 이탈리아를 따돌리고 가장 먼저 통산 4회 우승국으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주요 선수

이탈리아의 로베르토 바조와 브라질의 호마리우가 펼친 라이벌 대결은 1994년 대회를 뜨겁게 달군 최대 화젯거리였다. 결승전 직전까지 보다 강한 임팩트를 남긴 쪽은 바조였지만, 우승과 함께 최후에 미소를 지은 승리자는 호마리우였다. 호마리우는 바조를 따돌리고 월드컵 MVP 및 1994년 FIFA 올해의 선수상 등을 휩쓸며 커리어 최고의 한 해를 만끽했다.

 

6골로 득점왕에 오른 불가리아의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 역시 1994년 대회를 빛낸 최고의 스타 중 한 명이었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불가리아의 공격을 진두지휘한 스토이치코프는 특히 독일과의 8강전에서 성공시킨 프리킥 결승골로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반면 로타 마테우스는 기대 이하의 활약으로 일관하며 8강에서 고배를 마셨고, 독일에서는 위르겐 클린스만 정도가 5골을 터뜨리며 제 몫을 다해냈을 뿐이었다.

 

그 밖에 스웨덴의 토마스 브롤린, 루마니아의 게오르그 하지, 네덜란드의 데니스 베르캄프 등도 앞선 스타 선수들과 함께 1994년 대회의 공격적인 흐름을 주도했다. 지난 대회 최고의 인기 스타였던 카메룬의 로저 밀러는 만 42세의 나이로 1994년 대회에도 참가, 월드컵 최고령 출전 및 최고령 득점 기록을 모두 새롭게 썼다.

 

 

수상 기록

MVP
1위 호마리우(브라질)
2위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
3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득점
1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6골), 올렉 샬렌코(러시아/6골)
3위 호마리우(브라질/5골), 로베르토 바조(이탈리아/5골), 위르겐 클린스만(독일/5골), 케네트 안데르손(스웨덴/6골).
7위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아르헨티나/4골) 외 2명.

 

베스트 팀
골키퍼: 미셸 프뢰돔(벨기에).
수비수: 조르지뉴, 마르시오 산토스(이상 브라질), 파올로 말디니(이탈리아).
미드필더: 둥가(브라질),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불가리아), 게오르그 하지(루마니아), 토마스 브롤린(스웨덴).
공격수: 호마리우(브라질), 로베르토 바지오(이탈리아),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미국 월드컵 이모저모

01

1994년 미국 월드컵은 대회 역사상 최다 관중(약 350만 명)을 동원하며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흥행이 반드시 미국의 높아진 축구 열기를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로, 미국 내 월드컵 경기 평균 시청률은 4.2%로 사실상 바닥을 쳤고, 설문조사 결과 월드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국민들도 여전히 70% 정도에 달했다.

02

그럼에도 미국의 최다 관중 동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경기장의 평균수용능력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눈에 띄게 컸기 때문이다. 미국은 종합 구장이나 미식축구 구장을 확장하여 월드컵 구장으로 활용했는데, 총 9개 구장 가운데 7개 구장이 6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대형 구장들은 대부분이 히스패닉계, 유럽 이민계, 그리고 외국인 응원단으로 채워졌다.

03

축구는 여전히 미국에서 비인기 종목이었지만, 1984년 LA 올림픽에서의 흥행 이후 그 입지가 커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특히 미국 정부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부터 히스패닉계를 겨냥한 축구 시장의 활성화에 남다른 관심을 나타내 왔다. 1994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결과 1996년에는 메이저리그사커(MLS)가 정식 출범되기까지 했다.

04

마라도나의 도핑 테스트 적발은 이 대회 최고의 빅뉴스였다. 명백한 코카인 양성 반응에도 불구하고 마라도나는 눈물로써 결백을 호소했는데, “트레이너의 추천으로 복용해 온 파워 드링크에 문제가 될 만한 성분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절대로 고의로 약물을 복용한 것은 아니었다”라는 것이 마라도나 측의 주장이었다.

05

한편 콜롬비아에서는 미국전에서 자책골을 기록한 수비수 에스코바르가 귀국 후 마피아에 의해 총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에스코바르의 자책골로 인해 도박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은 마피아가 분을 참지 못하고 기관총을 난사한 것이다. 이 사건 이후 콜롬비아는 국제적 비난을 면할 수 없었고, 에스코바르에겐 애도의 물결이 쏟아졌다.

06

1994년 월드컵은 경기 후 비디오 판독이 도입된 최초의 대회였다. 비디오 판독에 의해 최초로 징계를 당한 선수는 이탈리아 수비수 마우로 타소티였는데, 타소티는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루이스 엔리케의 코뼈를 부러뜨렸음에도 반칙 판정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비디오 판독 결과 타소티는 명백한 반칙을 범한 것으로 밝혀졌고, 그로 인해 8경기 출장정지라는 중징계 철퇴를 맞았다.

07

반면 독일의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자국 축구협회로부터 징계를 당한 독특한 케이스였다. 에펜베르크는 대한민국과의 조별리그 경기 도중 팬들의 야유를 참지 못해 가운데 손가락을 내미는 제스처를 취했고, 이 장면이 발각되어 월드컵 도중 대표팀에서 중도하차해야 했다.

08

1994년 월드컵은 역대 최초로 승부차기에 의해 결승전 승패가 가려진 대회다. 이 결승전 최초의 승부차기에서 가장 큰 희생양으로 떠오른 선수는 이탈리아의 마지막 키커로서 실축을 범한 로베르토 바조였다.

09

바조는 이 승부차기 실축 이후 성난 팬들에 의해 동상이 부서지는 등 엄청난 수난을 겪어야 했다. 훗날 바조는 “1994년 월드컵 이후 승부차기를 실축하는 꿈을 여러 차례 꿨다”며 트라우마를 겪었음을 공개했다.

관련글 더보기